하리 이야기/하리의 작은 책방

이유미 - 지금 여기 페미니즘 [사회운동]

팽이a 2019. 10. 27. 19:25

*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페미니즘 책중의 최고이다. 가끔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기 위해 남을 가르치는 태도로 전개되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은 같은 의견을 가진 이들이 아닌,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보기에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쉽게 설명하는 논조로 구성되어 있어, 처음 페미니즘을 접하는 이들이나 이슈화되는 극단적은 부분만을 보고 페미니즘에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 보기에 아주 적합하다. 만약, 당신이 페미니즘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오히려 이렇게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럼 집안일은 누가 하냐고요? 아이와 노인 그리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을 여성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가 서로 돕고, 국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장차 사회의 일원이 될 아이를 기르고 아픈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을 돌보는 일을 개별 가족이나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가 함께 책임진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노후를 불안해하며 값비싼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것보다 훨씬 든든하고 따뜻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사회가 가족의 역할을 나눠서 맡고 남성과 여성의 노동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면, 남성은 지금처럼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성 역시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덜 수 있겠지요. (28~29p)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가사와 양육노동을 그 중요성만큼 인정하고 이와 더불어 그것이 여성에게만 전가되지 않도록 사회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선은 남녀 가리지 않고 집안일을 나눠서 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읍시다. 그리고 아이를 돌보는 일, 밥을 짓는 일,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 청소 일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만큼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사와 양육을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법과 제도도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35p)







  성욕과 성적인 행위에 대한 규정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으며 남성의 공격적 성욕이 주체할 수 없는 본능으로 늘 인정되었던 것도 아닙니다. '남성의 성욕은 공격적'이라는 통념이 있다면 그 역시 사회적인 산물입니다. 따라서 성폭력이 발생하는 원인도 남성의 본능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에서 찾아야 합니다. (41p)







  성폭력은 변태나 저지르는 우발적 범행이 아닙니다. 성폭력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중적 성규범과 위계적인 권력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상적으로 발생합니다. 따라서 성폭력이 사라지게 하려면 변태들을 솎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중적인 성규범을 바꿔나가고 여성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53p)







  사회적으로 형성된 남성의 성적 행동을 본능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성의 성 상품화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같습니다. 여성의 성을 쾌락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남성 본능에 따른 행동이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이를 바꾸려는 노력도 불필요하다는 주장과 같기 때문입니다. 한편 도덕적으로 타락한 개인들의 문제로 접근하면 성을 사고파는 남녀를 단죄하고 교화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단죄와 교화의 대상은 언제나 여성이었습니다. 또한 여성들이 먹고살기 어려워 생계를 위해 성판매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은 항상 간과되었습니다.
  성매매를 비롯한 여성의 성 상품화는 성규범과 사회경제적 문제를 포괄하여 분석해야 합니다. 성을 사는 사람이 주로 남성인 이유는 이중적인 성규범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중규범은 남성이 성욕을 자유롭게 추구하기 위해서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삼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보면서도 여성이 성욕을 드러내면 타락했다고 비난합니다. 여성의 성욕을 금기시하는 것이지요. 성매매는 남성성욕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여성의 성을 거래하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그리고 성을 구매하는 남성에게는 관용적이지만, 성을 판매하는 여성에게는 '창녀'라는 낙인을 씌워 사회적으로 배제합니다. 이는 여성에게 '헤픈 여자'로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두려움을 심어주고 성욕을 통제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오늘날 남녀평등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지만 여전히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성적인 주체가 되지 못하고 성적 이중규범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여성이 자신의 노동을 통해 독립적인 경제력을 갖출 조건이 제약된 현실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 성별분업은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약하는 한편 여성 노동을 저평가에 여성 일자리의 임금과 고용의 질을 저하시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취약하여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는 남녀 간 권력관계가 여전히 유지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매매도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성매매는 오늘날 만연한 성 상품화, 그리고 대다수 여성이 경험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렇게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성매매로 유입되는 여성의 경우 생계가 어렵거나 빚이 있는 경우, 학력이 낮은 경우가 다수입니다. 이는 성매매가 여성빈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줌니다. 큰 돈을 벌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여성이 성매매로 유입되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성매매는 부도덕하고 비정상적인 일부 여성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57~59p)







   합법적 규제는 성매매 여성을 일반 여성과 분리시키고 전업화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성매매 여성으로 등록했던 기록이 남으면 다른 직업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공창으로의 격리를 통해 성매매 여성은 공동체에서 배제되고, 창녀라는 낙인이 강화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등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창 밖의 여성은 불법화됩니다. 결국 성매매 여성의 지위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68p)







  그렇다고 모든 법 제도적 접근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매매 여성들은 법을 통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특히 폭력적이거나 변태적인 포주와 성 구매자를 처벌해 인신매매, 강제적 구금, 폭행 등 극단적인 인권유린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매매 여성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정당한 주체이고, 여성을 성매매로 떠미는 사회경제적 구조를 성매매 여성 스스로 고발할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 성매매 역시 여성이 억압과 착취에 놓여 있다고 해서 성매매를 불법화하고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여성 스스로 이중규범, 성 상품화, 성별분업,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 등 현실을 자각하고 이를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72~73p)







  자본가는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인 임금에서 여성의 재생산 노동을 공제하면서 큰 이윤을 얻고, 경제가 어려울 때에는 임금삭감과 해고 등을 통해 자신의 손실은 최소화하면서 가족에게 그 손실을 전가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노동자 가족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이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강제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118p)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의 돌봄을 거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재생산 노동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재생산 노동을 사회적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윤의 원천이 되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가족과 여성에게 전가합니다. 물론 국가가 복지정책을 통해 일부 보완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족의 책임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희생을 담보로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물론이고, 여성 억압적인 재생산 방식도 함께 바꿔야 합니다. (122p)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휴가제도는 실효성이 떨어지고 기혼여성에 대한 직장의 배려도 크게 부족하지요. 결국 여성들은 양육과 직장의 기로에서 선택을 강요당합니다. 여성들은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음이 편치 않고 극심한 갈등을 경헙합니다. … 여성에게 엄마로서의 삶이냐 개인의 자아실현이냐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여성에게 육아를 전담시키면서 아이 잘 키우기 경쟁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덜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회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확보해야 합니다. (125~126p)







  집안일은 모성에서 비롯되는 여성의 본능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맡겨진 역할입니다. 따라서 집안일의 전담자는 바뀔 수 있습니다. 남녀 모두가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남성은 서툴러서 못하겠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둬야 합니다. 서툰 것이 당연한 일이니까요. 잘 못한다면 이제 시작 단계라고 생각하고 집안일을 익히면 되겠지요. 여성 역시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일랑 거둬들이고 변화를 시작해봅시다.
  이처럼 일상적인 변화와 함께 근본적인 사회의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모든 직장과 학교에서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하며, 맛있고 믿을 수 있는 음식을 주변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먹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청소와 세탁 역시 편리하고 집단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지요.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통해 남녀 노동자들 모두 여가시간에 자신을 개발하고 지역사회 공동체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봅시다. (129~130p)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의 가장 큰 문제는 여성의 일자리가 파트타임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일단, 짧은 시간 일하기 때문에 임금이 줄어듭니다. 또한 여성들이 맡은 직무는 시간제 노동자를 써도 되는 중요하지 않은 일로 분류되고, 회사가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 우선 해고하거나 외주화할 가능성이 높아져 고용이 불안해집니다. 이미 여성이 주로 맡아온 역할들은 비핵심업무로 간주되어 임금이 적고 고용 역시 안정적이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여성의 일자리가 시간제로 고착되면 여성은 2등 국민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여성은 집안일을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하니까 저임금 비정규직도 괜찮다는 것이 유연근무제의 솔직한 도입 이유겠지요.
  뿐만 아니라 유연근무제가 일과 가정 양립을 돕겠다고 했는데, 여성들의 집안일 부담은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집안일은 본래 여성들의 몫이니까 일직 퇴근해서 아이를 돌보고 밥 지으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결국 여성의 가족 돌봄 의무가 축소되지 않고 대안적 사회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제도 확충은 미뤄집니다. 시간제 일자리가 성공적으로 도입되었다는 네덜란드 역시 시간제로 일하는 여성들의 증가로 보육시설 확충이 지연되었다고 평가됩니다. … 어린이집 시간과 부모의 근무시간이 맞춰지지 않고, 아픈 가족을 돌봐줄 사람이 없고, 경력단절 이후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아 여성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한다면 이를 자발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직장 다니면서 집안일까지 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공 보육시설과 공공 요양시설 등을 확대하여 양육부담을 덜어주고 임금과 고용을 안정화하며 출산, 육아 휴직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입니다. (148~149p)







  당장 수입이 필요해 취업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에게, 기막히게도 형편없는 일자리를 소개하면서 여성을 위한 일자리라고 홍보하는 정부가 참으로 뻔뻔합니다. 사회서비스 시장화 정책은 사회서비스를 보편적인 서비스로 만들지 못하고, 돌봄노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면서 열악한 일자리만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없습니다. (152p)







  가사와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려면 지금의 사회서비스 정책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선 여성이 가정에서 담당하던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사회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일이고 가치 있는 일임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지요. 돌봄노동은 여성의 책임이라거나, 개별 가족이 알아서 능력에 맞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일로 인식해야 합니다. 이 과정이 바로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기초가 될 것입니다.
  또한 돌봄이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는 당연히 해당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합니다.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해당 노동의 사회적 필요성과 중요성을 승인받는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 현재 무상보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양육자의 비용경감에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 당장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는 하지만, 공적 보육시설의 확충은 미뤄지고 맙니다.
  민간 보육시설의 목표는 이윤을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용을 최소화합니다. 그 결과 적은 수의 교사가 다수의 아동을 장기간 돌보게 되어 보육의 질을 담보하기 어려워집니다. 결국 보육시설에 대한 부모들의 불신은 커지고 아이는 엄마가 직접 돌보는 게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강화되죠.
  따라서 공공 보육시설 확충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보육교사의 노동권 개선이 동반되어야 하지요. 공적보육시설에 대한 신뢰는 보육의 질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보육의 질은 보육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담보되어야 가능합니다. … 만족도가 높은 국공립 보육시설이 확대된다면 더 많은 아동들이 이용가능할 뿐 아니라, 보육서비스의 표준이 확립되어 민간시설에게도 강제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결국 보육시설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가 향상되고 보육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는 것이지요. 
  공적인 사회서비스 확충과 함께 여성노동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여성을 가사책임자로 규정하는 성별분업은 여성의 노동을 부차적으로 여깁니다. 여성의 노동을 독립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남편의 수입을 전제하여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정당화하죠. 또한 임금으로 교환되지 않는 여성의 가사와 양육노동을 저평가하면서 유사한 업종의 노동역시 낮게 평가합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항하여 학교, 청소, 병원, 마트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낮은 임금과 불안한 고용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는 성별분업으로 여성의 노동을 부차화하는 구조를 바꾸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노동 저평가에 대한 재인식을 요구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지요.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더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면 노동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해야할 것입니다. 여성노동자가 여성노동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향한 운동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153~155p)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에게 성욕의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남성과 동일한 방식으로 성관계를 가질 자유를 달라는 것과 다른 의미입니다. 여성이 자신의 성을 생존의 방편으로 삼게 되는 현실, 그로 인해 여성이 남성의 성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하여 인격적 존엄이 손상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여성에게 성욕의 권리란 성이 상품으로 거래되지 않을 건리, 성적 수단으로 취급받지 않을 건리, 성적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 단지 성매매 같은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결혼을 비롯한 모든 남녀 관계에 비대칭적인 권력관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여성 스스로 자신에게 성욕의 권리라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침해하는 사회적 통념과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남녀관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사회가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도록 하면서 남녀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결혼 제도의 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또한 여성이 남성의 경제적 의존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성이 자신의 성을 생존의 방편으로 삼지 않아도 되는 물질적 기반이 있어야 하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여성의 노동을 제약하는 요인이었던 가사와 양육의 사회화를 비롯한 사회전반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167~168p)







  아이를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가 실현되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여성의 모성권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부담되어서 출산을 선택하지 못하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보육 서비스를 비롯한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또한 여성 스스로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모성을 의무로 여기는 담론을 변화시키는 속에서 임신중절 시술을 할 권리도 위협받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169p)







  기업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생산의 위기를 여성들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가정에서는 돌봄의 의무를 짊어지는 이중부담을 강화하면서 말입니다. 이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노동자운동이 성별분업에 대한 인식을 갖추고, 여성들의 돌봄 의무를 덜고 가사와 양육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노동과 자본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바꾸는 것과 재생산의 위기를 여성에게 전가하면서 유지되는 현재의 사회를 바꾸는 것은 함께 가야합니다.
  한편 성폭력 예방 문제를 매너의 문제로 보는 관점도 바꿔야 합니다. 가해자를 처벌하면 해결되는 개인적인 문제라거나, 주변에 여성이 있을 때 언행을 조심하는 정도의 도덕적인 의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여성억압의 현실이 어떠한지,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받는 차별과 성적인 폭력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이 있게 이뤄지지는 않고 있지요. … 성폭력은 남자다움/여자다움이라는 성역할 구분과 그로 인한 위계, 여성의 성을 금기시하고 남성의 공격적 성욕을 본능처럼 생각하는 이중적 성규범, 여성의 성을 상품으로 사고파는 풍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폭력을 매너나 에티켓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나아가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사회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186~18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