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문화는 이미 자연적으로 젠더화된 사람들에게 단지 역할만 지정해준 게 아니라, 사실은 문화 자체가 젠더화된 인간을 창조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34~35p) 성별정체성은 자기규정(self-definition)의 한 형태다. 우리는 성별정체성 안으로 후퇴할 수도 있고, 성별정체성으로부터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를 얻을 수도 있고, 성별정체성을 통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는 욕망을조정할 수도 있다. 우리 문화는 욕망에 집착한다. 욕망이 경제를 움직인다.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팔기 위해 욕망을 자극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뭔가를 욕망하도록 설계된 광고와 선전에 폭격당한다. 삶의 많은 다른 부분이 욕망에 의해 작동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체제로서의 젠더를 없애자고 주장할 때 청중이 공포에 질릴 만도 하다. 젠더는 우리 욕망을 정의하고, 우리는 만일 욕망이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문화가 욕망을 중요한 것으로 놓을수록 섹스와 젠더의 개념이 서로 뒤섞이는지도 모른다. (76~77p) 아이를 얻은 부모에게 주로 처음으로 하는 질문은 "아들이야, 딸이야?"이다. 여기에 훌륭한 대답이 있다. "몰라. 그 애가 아직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질문은 진지하게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젠더에 관한 질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83p) 내 논점은 페미니즘에 나쁜 것은 트랜스섹슈얼이나 심지어 트랜스섹슈얼리티 의제가 아니라는 거다. 페미니즘의 미래에 나쁜 건 남성 특권이다. 간혹 이전의 남성 특권을 조금이라고 하기엔 좀 많이 싸들고 오는 mtf트랜스섹슈얼들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상황을 잘 해결할 방법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일 터이다. 남성 특권이 어디에나 지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난 그 어떤 환경에서도 예외 없이 앞서 말한 과정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129p) 내가 보기에 그 여성들은 주류문화가, 특히 남성이 그들에게 가한 억압을 치유하기 위해 "여성만의" 즉 자신들만의 공간에 머문다. 그들이 트랜스젠더인 우리를 여성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양 극단의 다른 쪽, 즉 남성으로 인지된다. 그래서 그들이 치유되는 데 우리가 방해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들 공간에서 배제되는 이유다. (138p) '올바른 표적'이란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억압할 의지와 권력이 있는 집단이다. 트랜스섹슈얼들에게는 젠더 체제 그 자체가 표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젠더 체제에 편입되려는 욕망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체제를 공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39~140p) 난, 지배문화가 동성애와 젠더 모호성을 배제하는 건 성적 지향보다는 성 역할과 더 관련이 많다고 생각한다. (172p) 우리가 남자 아니면 여자라고 부르는 이것 아니면 저것의 젠더 계급 체제,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하나는 내려와야 하는 그 구조는 권력의 불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분법적 젠더 체제가 집요하게 유지, 존속되는 이유는 그 체제가 주로 권력 게임을 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 사람의 약 절반이 다른 절반을 지배하는 각축장이다. 이분법적 젠더 체제가 없으면, 남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 역학은 붕괴된다. 위계질서의 틀로 사용할 성별이 없어지면 젠더 체제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구성원은 아마 어쩔 줄 몰라 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타인들에게 휘두르는 권력이 좋은 것이라고 믿으며 그걸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 때문에 그 좋은 권력을 잃을까 봐 공포에 질려 있다. 난 여기서 "남성 특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 특권을 쥐고 휘두르는 사람들은 그걸 그냥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난 그것이 바로 젠더 의제의 핵심이며, 젠더 체제가 유지되는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남성 특권은 젠더 체제를 지탱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남성 특권"은 허락을 받았든 안 받았든, 어떤 공간, 사람이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차지할 수 있다고 상정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대부분의 문화에서 남성으로 양육된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대부분의 소녀와 여성에게는 특권 의식이 별로 없다. 특권은 이 문화에서 남성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남성이 차지하는 것이다.… 남성 특권은 성희롱, 강간, 전쟁으로까지 확장된다. 자본주의, 대중매체와 결합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할 폭주 기관차가 완성된다. … 이 지구에서 여성의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는 사상이라면 예외 없이 남성이 특권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우리가 모두 이 완고한 이분법적 젠더 체제를 포기하길 요구한다. 특권을 내려놓는 것은 이 젠더 체제가 해체되는 데 필수적인 선결 조건이다. … 난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특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혐의를 제가할 때마다 그들이 당황해 하는 걸 이해할 수 있어요. 많은 백인이 자신의 인종차별과 대면할 때 멍해지는 것과 비슷하죠. 통념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젠더화된 사람들이 다르게 젠더화된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공포와 학대를 직면하면 멍해지는 것과도 같아요. … 내 친구 미셸 모란은 웃으면서 자신이 여성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mtf트랜스섹슈얼들에게서 남성적인 거들먹거림을 알아챌 수 있다고 말해요. 그녀는 이렇게 농담하죠. "그들이 여성이 되고 싶다면, 모욕당하는 것부터 배워야 할 거야."(176~180p) 젠더는 계급 체제로 볼 수 있다. 젠더 체제가 있어, 남자와 여자라는 두 계급이 생긴다. 다른 모든 이분법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는다. 언제나 한쪽이 다른 한쪽을 억압한다. 두 성의 젠더 체제는 권력의 불균형과 그에 기대는 모든 것을 온존시킬 뿐이다. (180p) 이 문화는 가부장적이고, 성별은 가부장제의 기본 요소인 것 같다. 남자란 게 없다면 남성들이 특권을 가질 도리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만일 "여성"이라는 범주가 없다면 여성들이 억압받지도 않을 것이다. 젠더 철폐야말로 가부장제 철폐의 열쇠이며, 젠더 불평등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많은 부정의를 끝낼 방법이기도 하다. 모든 젠더 불평등은 젠더가 실재한다고, 오로지 두 개의 젠더만 있다고 단정한다. 젠더 불평등은 성차별, 동성애혐오 그리고 여성혐오를 깔고 있다. 여성권리 투쟁은 불균형을 유지하고 조화를 방해하는 체제를 철폐할 때까지는 끝날 수 없는 것이다. 중성성(androgyny)은 스펙트럼의 한쪽에는 남성적인 것이, 다른 쪽에는 여성적인 것이 있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이 곧은 선의 중간 어딘가에 "남성"과 "여성"의 이상적 혼합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나 중성성은 "중간"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양 극단을 유지시킨다.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우리는 각자에게 숨겨져 있는 더 많은 정체성의 아름다운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 중성성은 오직 둘뿐인 성별이라는 관념을 더 굳건히 하므로, 이분법적 젠더 체제의 함정으로 볼 수 있다. (187~188p)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는 둘 다 질서 정연한 젠더 체제를 원한다. 그들은 서로를 지탱한다. 그리하여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둘 다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지탱하는 매트릭스인 젠더 체제의 붕괴를 반기지 않는다.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성적 지향과 젠더의 이원론적 본성으로 인해 하나는 다른 하나를 강화하게 된다. 양성애와 중성성 또한 그들 자신을 주어진 양극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시킴으로써 이원론을 유지시키고 있다. (21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