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하리의 소소하고 작은 이야기

최승자 -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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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팽이a 2019. 10. 13. 16:38




1. 밤


사악한 밤이 밀려온다
밤의 창자 속에는
갖가지 요사스런 소리가 떨고 있다.
유령의 숨결로 가득찬
밤의 기류, 그 틈에서 언제나
나를 덮치기 위해
마악 손을 내뻗고 있는
저 튼튼한 죽음의 팔뚝

내 허약한 유리창으로
저 검은 물결을 막아낼 수 있을까
나의 정신과 몸뚱이 속으로
이입해 들어오려고
창밖에서 파도처럼 뒤끓고 있는
밤의 기류를.

밤의 거대한 해안에서
저승의 물결에 씻기우는
작은 조개 껍질
이윽고 어느 날인가 죽음의
부릅뜬 입술 안으로 빨려갈
빈 조개 껍질









2. 너에게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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