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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 데미안 [을유문화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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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 데미안 [을유문화사]

팽이a 2019. 10. 27. 19:21



  "아주 간단해! 뭔가 있어서 그 이야기의 발단이 된 것은 표적이야. 어떤 남자가 있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다른 사람들을 겁나게 하는 뭔가가 있었지. 사람들은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어. 그가 그들을 압도했던 거야, 그와 그의 자손들이 말이야. 그러나 아마, 아니 확실히, 그건 우체국 소인처럼 정말로 이마에 찍힌 표적은 아니었을 거야. 세상 사는 데 그렇게 단순한 일은 드물어. 오히려 그건 거의 알아보기 힘든 낯선 무엇, 시선에 깃든 비범한 정신이나 담대함 같은, 사람들한테 익숙하지 않은 무엇이었을 거야. 그 남자는 힘을 지녔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움츠러들었어. 그는 하나의 '표적'을 지녔던 거지. 그걸 사람들은 자기네 원하는 대로 설명할 수 있었어.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편한 대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려 하지. 사람들은 카인의 자손들이 두려웠어. 그들은 '표적'을 지니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표적을 원래대로 월함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설명한 거야. 사람들은 말했어, 이 표적을 지닌 놈들은 무섭다고. 그리고 사실 그들이 그렇기도 했어. 용기와 나름의 개성을 지닌 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늘 아주 두렵기 마련이거든. 겁 없는 두려운 족속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이 참 불편했겠지. 그래서 이 족속에게 별명 하나와 우화 하나를 달아 놓은 거야. 복수하려고, 자기들이 견뎌 낸 무서움을 모든 사람들을 위해 좀 덜한 것으로 해 두기 위해서 말이야. 이해가 되니?"

  "그래. 그러니까 카인은 전혀 나쁜 사람이 아니었을 거란 말이지? 성경에 있는 이야기들도 모두 실제로는 사실이 아닐 거라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그렇게 오래된 해묵은 이야기들은 늘 사실이야. 하지만 항상 사실대로 기록되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사실대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야. 간단히 말하자면 내 생각에 카인은 멋진 인간이었는데, 그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해서 이 이야기를 그에게 달아 놓았다고 봐. 그 이야기는 그냥 하나의 소문이었어.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떠들이 대는 그런 것 말이야. 하지만 카인과 그 자손들이 일종의 '표적'을 지니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랐다는 점에 있어서는 완전히 사실이야."

  "그러면 동생을 때려죽인 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해?"

  "아니! 죽인 건 분명해. 강한 자가 약한 자 하나를 때려죽인 거야. 정말 그의 형제였는지는 의심해 볼 수 있겠지. 그런데 형제였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결국 인간들은 모두 형제잖아. 그러니까 어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때려죽인 거야. 어쩌면 그건 영웅적인 행위였을지도 모르고, 아마 아닐 수도 있겠지. 하여간 이제 다른 약한 자들이 잔뜩 겁이 난 거야. 그들은 엄청 탄식했지. '왜 너희들도 그를 때려죽이면 되잖아?'라고 누가 물으면, 그들은 '우리는 겁쟁이거든'이라고 하지 않고 '그럴 수가 없어. 그는 표적을 지니고 있으니까. 하느님이 그에게 표시를 해 놓으셨거든!' 대충 그런 식으로 사기가 이루어진 게 분명해. 이런, 내가 너를 집에 못 가게 붙들고 있군. 그럼 잘 가라!" (36~38p)








  "내가 너를 깜짝 놀라게 했잖아. 넌 그러니까 잘 놀라는 거야. 그건 네게 두려워하는 일이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지.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사람은 누구 앞에서도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어.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에게 자기 위에 군림할 힘을 내주었기 때문이지. 예를 들어, 뭔가 나쁜 짓을 했는데, 다른 사람이 그걸 알고 있어. 그러면 그가 너를 지배할 힘을 갖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니? 이제 분명하지, 안 그래?" (47p)







  그런 충격들은 늘 '다른 세계'에서 왔고, 두려움과 강박과 양심의 가책을 함께 몰고 왔다. 늘 혁명적이었고, 내가 그 안에 그대로 살아가고 싶었던 평화를 위태롭게 했다. … 내 안에서 유년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듯, 내 부모님 또한 깨어나는 생명의 충동을 말없이 덮어 두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저 정성껏 보살펴 주며, 현실을 부인하고 점점 더 비현실적이고 가식이 되어 가는 어린아이의 세계에 좀 더 머무르려는 내 부질없는 시도들을 도와주었을 뿐이다. 이 점에선 부모가 과연 뭘 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고, 내 부모님을 탓할 생각이 없다. 나를 추스르고, 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은 결국 나 자산의 일이었다. 그리고 잘 보호받고 자란 자식들이 대개 그렇듯 나는 내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고 지나간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요구가 주변 세계와 극심한 갈등에 빠져드는 시기, 앞으로의 길을 혹독하게 싸워 얻어야만 하는 시기.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운명인 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체험한다. 생애 단 한 번, 어린 시절이 삭아서 천천히 무너져 내리고,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우리를 떠나가려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휩싸여 있음을 느끼게 되는 바로 그 때에.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모든 꿈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그 꿈에 평생 고통스럽게 달라붙어 있다. (57~59p)







  "그건 불가능해. 인간에게는 남을 조종할 수 있는 자유 의지는 없어. … 하지만 누군가를 관찰할 수는 있지 .그러면 종종 그 사람이 무얼 생각하는지 혹은 무얼 느끼는지 꽤 정학하게 알아차릴 수 있어. 그러면 그 사람이 다음 순간에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있어. … 자연은 그런 일들로 가득하지만, 누구도 그걸 설명하지 못해. … 어떤 짐승이나 인간이 자신의 모든 주의력과 온 의지를 어떤 특정한 일에 모으면, 그걸 이루기도 하지. 그게 다야. 네가 알고 싶어 하는 일도 바로 그래. 어떤 사람을 세심하게 관찰해 봐. 그럼 너는 그에 대해 그 자신보다 더 잘 알게 돼." (65p)







  "사람은 늘 물어야 해, 늘 의심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그 문제는 아주 간단해. … 오로지 제게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 제가 필요로 하는 것, 꼭 가져야만 하는 것만 찾아.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일도 이루어지는 거지. 자기 외에 다른 동물은 갖지 못한 마법과도 같은 육감을 개발하는 거야! 우리 인간은 물론 동물보다 활동 범위도 넓고,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도 많지. 하지만 우리 역시 꽤나 좁은 범위 안에 매여 있고, 그걸 벗어날 수 없어. 내가 이런저런 것을
 상상할 수는 있겠지. …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거나 충분히 강력하게 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소망이 완전히 나 자신 안에 있을 때, 실제로 내 존재가 완전히 그 소원으로 꽉 차 있을 때뿐이야. 그렇게만 되면, 너의 내면으로부터 요구되는 것을 실행하자마자 잘될 거야. 좋은 말에 마구를 채운 듯 네 의지를 행사할 수 있어. …" (67p)







  "내게는 간단한 방법이 있어. 매번 아주, 아주 뚫어지게 그분의 눈을 들여다보는 거야.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걸 못 견뎌 해. 다들 불안해하지. 만약 네가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관철시키려 하고, 갑자기 아주 확고하게 그의 눈을 응시하는데도 상대가 전혀 불안해하지 않으면 포기해! 그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어, 절대로! 하지만 그런 일인 아주 드물어." (69p)







  "내가 보기에, 넌 남에게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생각을 많이 해. 사정이 그렇다면, 넌 생각했던 것을 다 체험해 보지 못했다는 것도 스스로 알 거야. 그건 좋지 않아. 생각이란, 우리가 그대로 살아 내는 것만 가치 있는거야. 너의 '허락된 세계'는 세계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걸 넌 알았어. 그런데 신부님이나 선생님들이 하듯 두번째 절반을 감추려고 했지.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될거야! 한번 생각이라는 걸 시작하면 누구도 그렇게 못해!" (74p)







  "… 우리는 각자 스스로 찾아내야 해. 무엇이 허락되고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를 자기에게 금지된 것은 무엇인지를 말이야. 사람은 금지된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도 아주 나쁜 인간일 수 있어. 정반대일 수도 있고. 실제로 그건 그저 편안함의 문제란 얘기야! 너무 안일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 판단을 하기 힘든 사람은 기존의 금지들에 그대로 순응해 버리지. 그게 쉬우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내면에서 금지를 느껴. 그들에게는 다른 명예로운 사람이 일상으로 하는 일들이 금지되고, 보통은 금지되는 다른 일들이 허락돼. 그건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해." (75p)







  "똑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아무 가치도 없어, 전혀 없어.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질 뿐이지. 그건 죄악이야. 자기 자신 속으로 완전히 기어 들어갈 수 있어야 해, 거북이처럼." (77p)







  그리고 차츰 그것은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그림은 나를 닯지 않았지만 ―그래서도 안 된다고 나는 느꼈다 ― 그러나 그것은 내 삶을 결정지은 것이고, 나의 내면, 나의 운명 혹은 나의 수호신이었다. 언제고 내가 다시 친구를 찾아낸다면, 친구의 모습이 저러하리라. 언제가 내가 애인을 하나 얻게 된다면, 애인의 모습이 저러하리라. 나의 삶이 저럴 것이며, 나의 죽음으 저럴 것이다. 그것은 내 운명의 울림이자 리듬이었다. (97p)







  우리는 우리가 숭배하는 신 하나를 가지고 있지만, 그 신은 임의로 나누어 놓은 세계의 반쪽만 나타내고 있을 뿐이라고 (그것은 공적이고, 허락된 '밝은' 세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계 전체를 숭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동시에 악마이기도 한 어떤 신을 갖거나, 아니면 신에 대한 예배와 나란히 악마에 대한 예배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아브락사스가 신이자 악마이기도 한 바로 그 신이었던 것이다. (108p)







  그러나 단 하나, 내가 할 수 없는 게 있었다. 내 내면에 어둡게 숨어 있는 목표를 끄집어내 다른 사람들이 하듯 눈앞에 분명히 그려 보이는 일이었다.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될 것이고, 그러자면 얼마나 걸리고 어떤 장점들이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다. 난 그것을 할 수 없었다. 아마 나도 언젠가는 그런 무엇이 되겠지만, 내가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마 나 또한 찾고 또 계속 찾아야겠지, 여러 해 동안. 그러고는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어떤 목표에도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떤 목표에 도달하지만, 그것은 악하고, 위험하고, 끔찍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려는 것, 난 그것을 살아 보려 했을 뿐이다. 그게 왜 그리 힘들었을까? (111p)







  하지만 세상에 그런 우연이란 없다. 무언가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기한테 절실한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그리로 이끌어 간 것이다. (113p)







  그런 모습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 비이성적으로 얽히고 설킨 기이한 자연의 형상들에 몰두하는 것은 내심 우리의 내면이 이 형상들을 있게 한 어떤 의지와 일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곧 그 형상들을 우리의 뜻에 의한 것으로, 우리의 창조물로 여기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우리는 우리와 자연 사이의 경계가 흔들리고 녹아버리는 것을 보며, 우리 망막 위의 이 같은 이미지들이 바깥의 인상들에서 비롯한 것인지 아니면 내면의 인상에서 온 것인지 잘 모르겠는 그 기분을 알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창조자인지,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쉴 새 없이 세계의 끊임없는 창조에 함께하고 있는지를 이 연습에서만큼 간단히 쉽게 알 수 있는 곳은 없다. 더구나 우리 안의 신과 자연 속에서 주재하는 신은 분리할 수 없는 동일한 신성이다. 그래서 만약 바깥 세계가 멸망한다면, 우리 중 누군가가 그것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산과 강, 나무와 잎, 뿌리와 꽃 같은 자연의 모든 형성물은 우리 안에 이미 그 원형이 깃들어 있고, 영혼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본질은 영원이고, 그 본질을 우리는 알지 못하나, 대개 사랑의 힘과 창조의 힘으로 느껴지곤 한다. 

  몇 년 후에야 나는 이러한 내 관찰이 이미 어떤 책에서 확인되고 있음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침을 뱉은 담벼락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훌륭하고 깊은 감동을 주는지에 대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 말이었다. 그는 축축한 담벼락의 그 얼룩들 앞에서 피스토리우스와 내가 불 앞에서 느낀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다음번에 만났을 때 오르간 연주자는 내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개인의 경계를 늘 너무 좁게 그어 버리곤 하지! 언제나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구분해 놓은 것, 남과 다르다고 인식하는 것만 개인으로 치지.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전체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우리 몸이 어류나 그 훨씬 이전의 생물체에까지 이르는 진화의 계보를 지니고 있듯이, 일찍이 인간의 영혼들 속에 살았던 모든 것을 우리 영혼 속에 가지고 있지. 이제까지 존재했던 모든 신과 악마는, 그것이 그리스인들에게 있었건, 중국인들에게 있었건, 아프리카 토인들에게 있었건 간에 모두 우리 안에 함께 있소. 가능성으로, 소망으로, 탈출구로 거기 있는 거요. 전혀 교육받지 못한 평범한 아이 하나만을 남기고 인류가 멸망해 버린다 해도, 그 아이는 사물의 모든 과정을 다시 찾아낼 거요. 신들, 악마들, 낙원, 계울과 금기, 구약과 신약, 모든 것을그 애는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좋아요. 그렇다면 개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우리 내면의 모든 것을 이미 완성된 상태로 가지고 있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노력하는 겁니까?"

  "잠깐! 세계를 그저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느냐 아니면 그 사실을 알고 도 있느냐, 그건 큰 차이지! 어떤 미친 사람이 플라톤을 연상시키는 생각을 내놓을 수도 있고, 헤른후트파 학교에 다니는 경건한 어린 학생이 그노시스파나 조로아스터파에 나타나는 심오한 신화적 연관을 독창적으로 숙고해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자기 안에 세계가 있다는 건 몰라! 그것을 모르는 한 그는 한 그루 나무나 돌인 거지. 기껏해야 동물이고. 그러나 이 인식의 최초의 빛이 희미하게 동터 올 때, 그때 그는 인간이 되는 거요. 당신도 아마 저기 거리에 걸어 다니는 두 발 달린 족속들을 단지 직립 보행을 하며 자식을 열 달 배 속에 넣고 다닌다는 것만으로 모두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가 물고기나 양, 벌레나 거머리인 줄은 당신도 알고 있을 거요. 얼마나 많은 부류가 개미인지, 얼마나 많은 부류가 벌인지! 자, 그들 하나하나 속에 인간이 될 가능성들이 부여되어 있지. 하지만 각자 그것을 예감할 때,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을 의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배울 때에야 그 가능성들은 비로소 그의 것이 되는 거요." (121~123p)







  "자네를 날게 만든 그 들어 올림,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우리 위대한 인류의 재산이야. 모든 힘의 뿌리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그것인데, 하지만 곧 두려워지고 말지! 엄청 위험하거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꺼이 날기를 포기하고 법의 규정에 따라 인도 위에서 걸어 다니는 쪽을 택하지. 하지만 자네는 아니야. 자네는 계속 날고 있어, 유능한 젊은이답게 말이야. 그런데 보게, 자네는 놀라운 것을 발견하고, 점차 그것의 주인이 되어 가고, 자네를 공중으로 낚아채 올린 저 거대하고 보편적인 힘에게로 하나의 섬세하고 작은, 독자적인 힘을 내놓지. 하나의 기관, 하나의 방향키를 말이야! 멋진 일이야. 그것이 없다면 그냥 속수무책으로 공중에 떠 있겠지, 미친 사람들이 그러듯 말이야. … 자네는 그 일을 하나의 새로운 기관, 즉 하나의 호흡 조절기를 가지고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이제 자네의 영혼이 근본적으로 얼마나 '개인적'이지 못한가를 알 수 있겠나? 이 조절기는 자네가 발명한 게 아니잖아! 그건 새로운 게 아냐! 그 조절기는 빌려 온 것으로,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해 온 거야.  " (124~125p)







  "…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 안 된다는 말이야.  자넨 걸핏하면 자기가 이상하다 생각하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고 자책하지.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해. 불을 들여댜보게. 구름을 바라봐. 그러다가 예감이 떠오르그 자네 영혼 속의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거기에 자신을 맡기고, 그게 선생님이나 아버지나 그 어떤 신의 뜻에 맞는지, 그들 마음에 들겠는지 그런 것부터 묻지 마! 그걸 묻는 바람에 다들 자신을 망치고 말지. 그걸 물어서 인도(人道)로 올라서 걷고, 구태의연한 인간이 되어 버리는 거야.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브락사스라 하고, 신이면서 동시에 악마이고, 자기 안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지니고 있어. 아브락사스는 자네의 어떤 생각에도 반대하지 않고, 자네의 어떤 꿈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그걸 잊지 말게. 그러나 자네가 언제고 흠잡을 데없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면, 아브락스사 자네를 떠나. 자네를 떠나서 자신의 사상을 담아 요리할 새 그릇을 찾는거지." (127p)







 

  "그러나 머리에 떠오른다고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지요.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수는 없잖아요."
 
  "상황에 따라서는 죽여도 돼. 다만 죽이는 건 대부분 잘못된 일이라는 것뿐이지. 나 역시 머릿속을 스쳐 간 모든 생각을 무조건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말은 아닐세. 그건 아니야. 다만 자네 마음에 떠오른, 그 자체로 좋은 의미를 지닌 어떤 생각을 몰아낸다거나 그것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망쳐 버려선 안 된다는 말이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대신 엄숙한 생각을 하며 잔에 든 포도주를 마시며 희생 제물을 바치는 비밀 의식을 생각할 수도 있지. 또 그런 행위 없이도, 자신의 충동과 유혹을 존경과 사랑으로 대처할 수 있다네. 그러면 그것들이 제 의미를 드러내지. 그것들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으니까. 다시 한 번 정말로 미친 생각이나 죄 많은 생각이 떠오르거든, 싱클레어, 혹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거나 대단히 외설적인 어떤 짓을 하고 싶어지거든, 그렇게 자네 속에서 공상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브락사스라는 것을 잠시 생각하게! 자네가 죽이고 싶어 하는 인간은 결코 실재하는 아무아무개 씨가 아니라 분명 하나의 위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야.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우린 그 누군가의 모습에서 바로 우리 내면에 들어앉아 있는 무엇인가를 미워하는 거야. 우리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지 못하거든."

  "우리가 보는 것들은 바로 우리 내면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것들이지. 우리가 내면에 지니고 있는 것 이외의 현실이란 없어.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처럼 비현실적으로 사는 거지. 바깥에 있는 것들을 현실이라 여기고 자기 안에 있는 그들 본연의 세계는 입도 뻥끗 못하게 하니까. 뭐 그러면서도 행복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일단 다른 것을 알게 되면, 그다음엔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선택할 여지는 없어. 싱클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은 쉽고, 우리가 가는 길은 어렵다네. 우리 그 길을 가 보세." (130~132p)







  여기서 갑자기 예리한 불꽃같은 깨달음이 나를 확 태웠다. 누구에게나 사명이 있지만, 누구도 그 사명을 스스로 선택하거나, 고쳐 쓰거나, 마음대로 관장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새로운 신들을 원하는 것도 틀렸고, 세상에 그 무엇인가를 주겠다는 생각도 틀렸다! 깨달은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의무가 있을 뿐 그 어떤 다른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안에서 확고해지고, 자기 자신의 길을 더듬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 길이 어디로 이끌든 간에. 이 깨달음은 나를 깊이 흔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이 체험에서 얻은 열매였다. 자주 나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 보며 상상의 유희를 펼치곤 했었다. 시인으로, 혹은 예언자로, 혹은 화가로, 그 무엇으로든 나에게 부여되었을 역할들에 대해 꿈꾸곤 했었다.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설교하기 위해, 그림 그리기 위해 거기 있는 게 아니었다. 나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그런 것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은 그저 부차적으로 생겨나는 일이었다. 누구나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그는 시인으로 혹은 광인으로, 예언자로 혹은 범죄자로 끝날지도 몰랐다. 이는 그가 관심 가질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 결국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임의의 어떤 운명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운명을 찾는 것이고, 그 운명을 자기 내면에서 온전히 끝까지 살아 내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반쪽이고, 도피의 시도이고, 대중의 이상으로의 재도피이며, 적응이자 스스로의 내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두렵고도 성스럽게 새로운 이미지가 내 앞에 떠올랐다. 수없이 예감했고, 이미 자주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제야 비로소 확실히 체험했던 것이다. 나는 자연이 던진 생명이었다. 미지 속으로, 아마도 새로운 것에로, 아마두 무(無)에로 던져졌다. 그리고 원초적 심연으로부터의 이 던져짐이 남김없이 이루어지게 하고, 그 의지를 내 안에서 느끼며 그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148~149p)







  "… 저는 그때 자주 죽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길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어렵습니까?"

 "태어나는 것은 늘 어려워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려웠나요? 그저 어렵기만 했나요? 아름답지는 않았나요? 혹시 아름다운, 더 쉬운 길을 알았던가요?"

"그건 힘들었어요. 꿈이 올 때까지는 힘들었어요."

"그래요, 사람은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고 나면 길은 한층 쉬워지지요. 하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새로운 꿈이 나타나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떤 꿈에도 집착해선 안 돼요."

"모르겠습니다. 제 꿈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그 꿈이 영원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새의 그림 아래에서 제 운명이 어머니처럼, 연인처럼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운명에 속해 있을 뿐, 달리 그 누구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 꿈이 당신의 운명인 한, 당신은 그것에 계속 충실해야겠지요. 싱클레어, 정말 어린아이로군요! 당신의 운명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것은 당신이 꿈꾸듯 언젠가는 완전히 당신 것이에요. 당신이 변함없이 충실하다면요." (165~167p)







  … 표적을 지닌 우리는 미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걱정할 의무는 없었다. 모든 교파, 모든 구원론이 우리에게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쓸모없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의무요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각자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 내면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싹의 요구에 따라 그 뜻대로 살며, 알 수 없는 미래가 무엇을 가져오든 그에 대한 준비를 하며 사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170~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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