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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하리의 소소하고 작은 이야기
린이한 -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비채] 본문
* 작가의 비애를 제외하고도 이 소설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너무 가슴아프다. 이 책은 생존자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가해자가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떠한 건지 잘 알려준다. 책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서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다. 타인의 아픔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이 책은 꼭 읽어봐야하는 책이다.

며칠 동안 생각했지만 방법은 하나뿐이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게 무엇을 하든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면 된다. 선생님을 사랑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내가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43p)
결혼식이 한 여자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정의하는 건 여자의 외적, 내적 아름다움이 결혼과 함께 내리막길을 걷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는 나중에야 알았다. 여자는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성적 매력을 자발적으로 판도라의 상자에 넣어 봉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녀와 첸이웨이가 쓰는 킹 사이즈 침대가 유일하게 그녀가 미모를 마음껏 발산해도 좋은 공간이었다. 이 침대가 바로 그녀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56p)
두 소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리궈화가 일부러 시시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는 걸 알았다. 아는 게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63p)
리궈화를 결심하게 만든 건 팡쓰치의 자존심이었다. 이렇게 정교하게 다듬어진 아이는 절대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더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종종 남과 자신을 찌르는 바늘이 된다. 그녀의 자존심은 그녀의 입을 꿰매는 바늘이 되었다. 이제 리궈화가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74p)
"마르케스의 작품 속에서 대변은 삶에서 날마다 마주해야 하는 황폐한 감정이야. 다시 말해서 대변을 누는 건 등장인물로 하여금 삶의 황폐함 속에서 생명의 황폐함을 깨닫게 하는 장치이지." (92p)
'그가 내 사춘기를 찢어버렸지만 나도 내 사춘기를 찢어버릴 수 있어. 그가 한 것처럼 나도 할 수 있어. 내가 나를 버린다면 그는 나를 다시 버릴 수 없을 거야. 어차피 우리가 먼저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했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네게 뭘 하든 상관없잖아. 안 그래?'
진실은 무엇이고, 거짓은 무엇일까? 진실과 거짓은 상대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세상에 절대적인 거짓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녀는 찢겼고 휘저어 뭉개졌으며 찔려 죽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녀도 선생님을 사랑한다면 그건 사랑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것이 된다. 그녀에게는 다른 미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과거 자신의 위조품이다. 애처에 진품이 없는 위조품. 분노의 오언절구는 영원히 늘여 쓸 수가 있다. 쓰고 또 쓰고 천 글자를 써도 끝나지 않는, 애절하고 장엄한 시가 될 수 있다. … 사악함이란 이처럼 평범한 것이고, 평범함이란 이처럼 쉬운 것이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생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건 현재에 충실하라는 뜻이 아니다. 인생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건 그녀가 위조품이 아니었을 때부터 이미 위조품이었다는 뜻이다. … 인생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건 이 모든 것이 단지 훗날 선생님을 아프게 하지 않으면서도 사정하게 하는 법을 더 빨리 터득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또 사람은 한 번밖에 살 수 없지만 계속 죽을 수는 있다는 뜻이다. 그 무렵 생각의 실타래가 미친듯이 그녀를 사냥하러 다녔다. 사냥꾼에게 쫓기다가 나뭇가지에 걸린 작은 동물처럼 죽어야만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더는 살고 싶지 않을 핑계가 생겼다. 그걸 깨닫는 순간 그녀는 미친듯이 기쁘고 또 미친듯이 슬펐다. 욕실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 웃다가 웃다가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울음이 터졌다. (94~95p)
그 후 20여 년 동안 리궈화는 자신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여학생들이 세상에 널렸다는 걸 알았다. 성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에게는 최고의 방패였다. 여학생을 강간해도 세상은 그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 때문에 그녀는 그의 곁으로 되돌아왔다. 죄책감은 아주 오래된 순수 혈통의 양치기 개였다. 어린 학생들은 온전히 걷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일어나 뛸 것을 강요당하는 어린 양이었다. 그럼 그는 무엇일까? 그는 그 어린 양들이 제일 좋아하고, 또 그 어린 양들을 제일 좋아하는 절벽이었다. (123p)
정상적인 관계란 어떤 관계일까? 다양한 경로를 통해 타인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서로 비교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옳음'이란 타인과 비슷하다는 뜻일 것이다. … "평범한 게 제일 낭만적인 거야"라던 이원의 말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말을 해야 했던 그녀의 처량함도 알 수 있었다. 말할 수조차 없는 사랑을 어떻게 타인의 사랑과 비교할까? 어떻게 해야 평범하고 또 어떻게 해야 정당할 수 있을까? (153p)
마오마오는 첸이웨이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세상이 그에게 너무 쉽기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자신이 죄책감을 떠안을지언정 남을 무시하지 않는 이원과는 달랐다. 모든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그의 단점이었다. 이원은 자신이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다.
"고전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말이라면 나는 그걸 이렇게 정의할 거예요.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작품'이라고."
첸이웨이는 너무 고전적이었다. (236p)
리얼리즘에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사랑스럽기 때문이고 누군가 죽는다면 그가 죽을 짓을 했기 때문이야. 악인이 있으면 작가는 그를 탑에 가두고 불을 질러서 뛰어내려 죽게 만들지. 그러나 현실은 달라. 인생은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책에서 세상의 아픔과 불행을 배웠지만, 현실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엄습할 때 책을 펼치고 논문을 써서 그 감정에 반박하지 못했어. 내 몸의 반쪽을 책 속에 끼운 채 안으로 파고들어 숨어버릴지 훌훌 도망쳐 나올지 갈피를 잡지 못했어. 나는 열여덟 살의 내가 싫어하던 어른이 된 것 같아. 하지만 너희는 아직 늦지 않았어. 아직 기회가 있어. 또 너희는 나보다 지혜로워. 정말이야. 넌 아직 늦지 않았어. (240p)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꿈이란 헛된 망상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향해 착실하게 나아가는 거예요. 내 꿈은 이원 언니 같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 언니가 셰익스피어의 십사행시로 눈물을 닦는다면 나도 그걸로 다른 걸 닦을 수 있어요. 나 자신을 닦을 수도 있죠. 셰익스피어는 위대해요. 셰익스피어 앞에서 나 자신을 지워버릴 수도 있죠. 요즘 일기를 쓰고 있어요. 글을 쓰면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언니의 말이 맞았어요. 글을 쓰고 있으면 내 생활을 일기장처럼 쉽게 내려놓을 수가 있어요. (244~245p)
선배가 그녀 위에서 몸을 떨 때면 그녀는 텔레비전 쪽으로 고개를 돌려 영화를 보았다. 순정파 남자 주인공과 중병에 걸린 여자 주인공이 키스할 때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영화와 현실의 가장 큰 차이는 영화에서는 끝날 때 키스를 하지만 현실에서는 시작할 때만 키스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248p)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어요? 어째서 피해자가 입 다무는 걸 교양이라고 해요? 어째서 남을 때린 사람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죠? 정말 실망스러워요. 언니에게 실망한 건 아니에요. 이 세상이든 인생이든 운명이든 아니면 신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정말 형편없어요. 요즘은 소설을 읽다가 인과응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울음이 나와요. 세상에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같은 서정적인 결말이 싫어요. 왕자와 공주가 결국에는 결혼하는 해피엔딩이 혐오스러워요. 그런 긍정적인 사고가 얼마나 세상에 영합하는 비열한 결말인지! 그런데 내가 그것보다 더 원망하는 게 뭔지 알아요? 차라리 내가 세속에 영합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차라리 내가 세상의 이면을 본 적도 없는 무지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267p)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일말의 상상력도 없었다.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와 젊고 예쁜 불륜녀, 눈물을 흘리는 조강지처의 조합은 자세히 들여다볼 것도 없이 황금시간대 막장드라마 속 스토리로 치부되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죽음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걸 부정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작디작은 평화가 너무 이기적으로 보인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앞다투어 자신을 '루저'라고 칭하는 시대에 진정한 루저인 여자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아무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282p)
"넌 이 모든 걸 다 글로 쓸 수 있어. 속죄를 위해서도 아니고 승화를 위해서도 아니고 정화를 위해서도 아니야. 비록 네가 열여덟 살밖에 안 됐고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지만, 만약 네가 영원히 분노한다면 그건 네가 너그럽지 못해서도 아니고, 선량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이해심이 없어서도 아니야. 누구에게든 이유가 있어. 남을 강간한 사람에게조차 심리학적, 사회학적인 이유가 있어. 이 세상에서 아무런 이유도 필요하지 않은 건 오직 강간당하는 것뿐이야. 넌 선택할 수 있어.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동사들처럼 내려놓을 수도 있고, 뛰어넘을 수 있고, 벗어날 수도 있어. 하지만 넌 그걸 기억할 수도 있어. 네가 그걸 기억한다면, 그건 너그럽지 못해서가 아니야.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되기 떄문이지. 쓰치는 자신의 결말을 모른 채 이것들을 썼어. 지금 쓰치는 자기 자신이 사라졌다는 것조차 모르지만 일기는 또렷하게 남아 있어. 쓰치는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 -나를 포함해서- 을 대신해서 그 모든 걸 감당했던 거야. 이팅, 네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걸 영원히 잊어선 안 돼. 넌 쌍둥이 중에서 살아남은 아이야. … 인내는 미덕이 아니야. 인내를 미덕으로 규정하는 건 위선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이 비틀어진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이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미덕이야. 이팅, 분노를 표출하는 책을 써. 생각해봐. 네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운인지.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이 세상의 이면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320~3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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