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하리의 소소하고 작은 이야기

프리드리히 니체 - 니체전시집 [시그마북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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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 니체전시집 [시그마북스]

팽이a 2019. 10. 13. 16:58


1. 현재와 과거



내 마음은 이리도 무겁고, 시간은 이리도 울적하니
전혀 만족할 수 없구나.
슬픔과 고통 그리고 쾌락이
나를 깊은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 간다.
하늘을, 청명한 5월의 파란 하늘을 이제 나는
볼 날이 거의 없구나.
그렇듯 거친 바람이 휘몰아쳐 지금 나를
쾌락과 공포로 쓰러뜨리는구나.

지난날들의 유산을
나는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유산이 어린 날들의 행복을
끊임없이 기억에 되새겨 주었거늘
나는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린 시절 믿음 속에서
나를 붙들어주던 것들을,
내 마음을 주사위 놀음에 걸고
그것을 거의 다 삼켜버리고 말았다.

마음은 어떻게 되었던가?
어차피 잃어버린 것! 남은 것은 그저 눈물뿐!
울적한 마음의 그리움이 아닌
경쾌한 관능이 곡식 낱알을, 황금빛 곡식 낱알을
치장했다. ―그것은 겉치레가 아니었는가?
그 황금빛 낱알들은 잠깐 빛을 발하지만
그러나 죽음의 신이 찾아와 한 알 한 알에
힘차게 아니다라고 써 넣었다.

나는 고대의 동전 같구나.
푸른 녹이 끼고
이끼 낀, 과거에는 아름답게 각인된 장식도
지금은 부서져 흠집투성이
미혹의 도랑은 깊이, 몰인정하게
그 위를 기어다니고
세상의 오물은 잿빛으로 굳어
그 장식에 들러붙으려 하는구나.

누군가 내게 마음을 바친다 하더라도
그 사랑하는 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누군가 내게 물을 마시게 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 모두는 어디에 남아 있는가?
나를 비추던
맑은 태양의 눈동자는?
누가 마지막 남은 행복을 빼앗아 갔는가?
내 꿈과 내 희망을!

나는 쑤시는 아픈 마음을 던져버렸다.
쉬기 위해서.
그리고 그 위로 쾌락과 도박,
고통과 지식, 산더미 같은 짐을 굴려버린다.
고통 받고 억압당하고 짓눌리더라도
격동하는 시간 속에서
마음은 불꽃이 되어 자신을 옭아맨 것을 태우며 던져버린다.


(1863년)







2. 야상곡



나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모기 한 마리가 작게 윙윙거리며 맴도는 램프 불빛을 바라보았다.
나는 익숙한 땅을 여행해왔고,
익숙한 기쁨을 모두 마셔버렸다.
바람에 머리를 나부끼며 고조된 가슴을 활짝 열고
어스름한 황혼에 부드럽게 마음을 맡겼다.
피는 가볍게 날갯짓하며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죽은 이들을, 가장 사랑하는 죽은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구름 가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홀로 두리번거리며 다시 바라보았다
그것은 사랑하는 그들의 장례 행렬인가? 밤바람은
희미하게 날갯짓하고 대기 중에는 괴이한 기운이 감돈다
그들이다, 그들이 분명하다. 그리고 너까지 그 속에?
너도 죽어버렸던가? 너는 내 마음속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는데. 너마저도 이 세상을 떠나버렸던가?
그렇구나, 너의 사랑이 죽어서 저리로 떠나버린 것이구나!

적막이 나를 완전히 감싼다. 창에 처진
얇은 커튼 너머로 창백한 달의 모습이 비친다.
그 모습은 여기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방황하며 떠도는 망령처럼
섬세하고 희미한 구름이 그 모습에 매달려 장난치는구나.
구름은 내 방 벽에 그림자를 떨으뜨리고 지나가고― 나는 구름이 혼연히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마치 갖가지 상념이 춤추며
평온한 무덤 주위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는 듯하다.

내 앞에 펼쳐진 여러 권의 책.
그 속에 끼워진 빽빽하게 쓰인 한 장의 종잇조각.
그 책들은 흥미를 잃은 채 죽어 있다― 그렇지만 잔뜩 망설이면서도
나는 그 편지를 집어 들었다.
완전히 찌들어버린 글자, 이것을 쓴 손은
핏기를 잃어버렸고 그 손에 명령을 내린 마음은 죽었다.
이 편지에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그리고 그 늘어선 글자들 속에 내 고뇌의 모든 것이 담겨 있구나.

그렇지만 너희 두툼한 책들아, 너희는 죽지 않았다.
지혜로 부푼 배여, 너희는 죽지 않았다
친근한 마음으로 너를 두 손에 쥐면
고통에 겨워 의기소침했을 때
너는 내게 위안을, 포도주와 빵을, 나의 셰익스피어를 건네주었다.
내 마음아 그 시절을 잊지 말아라.
사람들은 달그림자처럼 떠나갔지만
너는 사려 깊은 시선으로 내 곁을 성실하게 지켜주고 있구나!

활활 타오르는 등불, ―흔들거리는 불꽃
방 그리고 내 가슴이 밝아진다.
눈을 떠라, 내 마음아, 무덤 속에서 기어 나오라
새 아침의 즐거움에 목욕하여라!
네 마음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너는
빨간 불꽃을 아직 저 멀리까지 날려 보낼 수 있으니,
네 강철 검은 녹슬어 모래 속에 묻혀 있구나
바위와 번개와 천둥으로 그 검을 갈고 닦아라!

등불의 마지막 반짝임도 사라졌다.
달그림자만이 가끔 스치듯 빠르게 지나가고
창이 울린다― 퇴색한 밤이 살며시 훔쳐보고
큰 한숨을 쉬며 밤바람이 불어온다.
손은 끝내 글쓰기에 지쳐 굳어버렸고
음울한 눈은 우수에 젖어든다.
모기들은 작게 윙윙거리며 그들의 저녁 노래를 속삭이고
나는 마음속 깊이 잠겨 안락의자에 앉아 안식한다.


(1863~1864년)







3. 
해석



내가 나를 해석하면 나는 나를 속이게 된다.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의 해석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오로지 자기 자신의 길을 걸어 올라가는 자는
내 모습도 더욱 맑은 빛에 비춰본다.







4. 소망



나는 수많은 인간의 생각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내 눈이 나 자신에게 너무 가까이 있기에
내가 보고 있는 것과 본 것은 내가 아니다.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더 멀어질 수 있다면
필시 나는 나 자신에게 더욱 도움이 되리라.
과연 내 적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으나
―가장 가까운 친구도 이미 너무 멀리 앉았구나
그렇지만 그 적과 나 사이의 가운데에 있구나!
그대들은 알까?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5.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까이 있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그를 멀리, 높은 곳으로 떠나게 하라!
그렇지 않고서 어찌 그가 내 별이 되겠는가?







6. <인간적인 것 너무나 인간적인 것>



네가 뒤를 돌아보고 있는 한, 우울함과 두려움이 너를 뒤쫓는다.
너 자신이 자신감에 넘치는 미래를 믿으면서도
오, 새야. 나는 너를 독수리들의 수에 함께 계산할까?
아니면 너는 미네르바의 총아인 수리부엉이인가?







7. 회의론자가 말한다



네 생애의 절반은 지나갔다. 시곗바늘은 움직이고
네 영혼은 두려움에 떤다!
이 영혼은 이미 오래전부터 방랑의 여행길에서
찾기를 원했지만 찾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이르러 망설이고 있는가?

네 생애의 절반은 지나갔다.
그것은 고통이었고 오류였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시시각각으로 지나간다!
너는 지금도 계속 무엇을 찾고 있는가? 무슨 이유로?를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아 헤매던 것― 그 근거의 근거!







8. 머리 시



당신은 불꽃의 창으로
내 영혼의 얼음을 깨뜨린다.
그리하여 내 혼은 거칠게 날뛰며
최고의 희망의 바다를 향해 질주한다.
끊임없이 더 밝게, 더욱 건강하게
그리고또 애정에 넘치는 필연에 둘러싸여 자유롭게
내 혼은 당신의 기적을 이렇게 찬양한다.
가장 아름다운 야누아리우스여!


(제노바 1882년 1월)







9. 밤의 노래



밤이다.
모든 것을 세차게 내뿜는 샘은 지금 더욱 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내 영혼 또한 세차게 내뿜는 하나의 샘이다.

밤이다.
모든 사랑에 빠진 자들의 노래는 지금 마침내 눈을 뜬다.
내 영혼 또한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의 노래이다.

내 안에는 억누를 수도, 억누르기도 힘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소리 높여 이야기하려 한다. 내 안에는 사랑의 갈망이 있따.
그것이 스스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나는 빛이다.
아, 내가 밤이었다면!
그러나 빛의 띠의 얽매여 있는 것,
이것이 나의 고독이다.

아, 내가 어두운 밤이었다면!
그렇다면 나는 빛의 가슴에 기대어 젖을 빨 텐데!

그리고 너희 번쩍이는 작은 별들아, 하늘의 반딧불들아
나는 너희마저도 축복하고 너희의 빛의 선물에 기뻐했으리라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빛 안에 살고 있다.
내게서 용솟음치는 불꽃을 나는 내 속으로 되삼킨다.
나는 받는 자의 행복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종종 꿈꾸었따.
받기보다는 훔치는 편이 그래도 행복할 것이 틀림없다고.

내 손이 늘 나눠주느라 쉴 틈도 없는 것.
이것이 내 가난이다.
기다리는 눈과 동경으로 빛나는 밤이 내 눈에 비치는 것.
이것이 나의 질투이다.

오, 모든 나눠주는 이는 얼마나 불행한가!
오, 내 태양은 얼마나 어두운가!
오, 갈망에 대한 갈망!
오, 이 풍요 속의 혹독한 굶주림!

그들은 내게서 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영혼에 닿을 수 있는가
주는 것과 받는 것, 그 가운데 하나의 단층이 있따.
그리고 가장 작은 단층이야말로 다리를 놓는 데 가장 곤란한 방해물.

내 미덕에서 하나의 굶주림이 태어나 자란다.
나는 내가 비추는 이들을 아프게 하고
내 베풂을 받는 이들로부터 빼앗고 싶다.
―이렇게 나는 악의에 굶주려 있다.

상대는 벌써 손을 내밀었는데
나는 손을 거둬들인다.떨어지면서도 아직 망설이는 폭포처럼.
이렇게 나는 악의에 굶주려 있따. 이러한 복수를 생각해낸 것은 내 충실함이다.
―이러한 계획이 샘솟는 것은 내 고독으로부터이다.

나눔에 담긴 내 행복은 나눔을 행하면서 죽어버렸다.
내 덕은 그 지나침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게 싫증났던 것이다!

시종 나눠주기만 하는 자의 위험은 수치심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늘 나눠주기만 하는 자에게는 손에도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긴다!

구걸하는 이들의 수치를 보아도, 내 눈은 이제 눈물로 넘쳐나지 않는다.
은혜로 가득했던 손은 이제 너무 굳어버려 전율을 느끼지 못한다.

내 눈의 눈물은 어디로 갔는가?
내 마음의 솜털은 어디로 갔는가?
오, 모든 나눠주는 자들은 얼마나 서글픈가!
오, 모든 빛나는 자들은 얼마나 과묵한가!

황량한 공간에 많은 태양이 돌고 있다.
모든 어두운 것을 향해 그들의 태양은 빛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게는 말없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 이야말로 빛나는 것에 대한 빛의 적의.
빛은 냉담하게 그 궤도를 운행한다.
빛을 발하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불공정하게,
다른 태양에는 몹시도 차갑게, 
이렇게 각각의 태양은 운행한다.

폭풍처럼 각각의 태양은 그 궤도를 날아간다.
그것이 그들의 여정이다.
스스로의 가차 없는 의지로 그들은 순종한다.
그것이 그들의 매정함이다.

오, 너희 어둠들아, 너희 밤의 동료들아.
빛으로부터 온기를 만드는 것은 너희이다!
오, 너희야말로 빛의 가슴에서 젖과 청량제를 마신다!

아, 빛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내 손이 얼음덩이리에 닿아 타오른다!
아, 내 안에 갈증이 있다, 그것이 너희의 갈증에 애태운다!

밤이다.
아, 내가 빛이어야 하다니!
밤의 동료들에 대한 이 갈증!
이 고독!

밤이다.
지금 내 갈망은 샘처럼 내게서 용솟음친다.
―말하고자 하는 갈망이.

밤이다.
지금 모든 용솟음치는 샘은 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내 영혼도 용솟음치는 또 하나의 샘이다.

밤이다.
지금 사랑에 빠진 모든 자의 모든 노래가 깨어난다.
내 영혼 또한 사랑에 빠진 한 사람
의 노래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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