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 지낸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 걸까.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죽을 뻔한, 그리고 의식이 없는 사람이 곁에 있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이 그렇게 쉽게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 부모, 내 친구, 혹은 내가 그렇게 스러진다면 어떻게 버텨야하는걸까. 그 답을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게 만들어준 책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면 한번쯤 빌려보면 좋을 것 같다. 누군가의 깊은 속마음을 듣고 난 후엔 꼭 묻는다. "오늘 이야기를 하고 나니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그 질문을 통해 자신이 했던 이야기를 몇발자국 떨어져서 또다른 자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속마음 말하기의 핵심이다. … 드러낸 상처에 대한 내 시선이나 태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치유가 결정된다. (5~6p) '그만해라, 그 정도 했으면 됐다'라는 말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 슬픔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극단의 고립감을 부추기는 무서운 말입니다. 슬픔 그 자체보다 더 힘든 것이 슬픔을 슬퍼하지 못하는 거예요.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면 결코 그 슬픔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억누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벼락같은 이별 앞에 목 놓아 울 수 있어야 나머지 생을 비틀리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슬픔을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슬픔에 대처하는 법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살면서 한번은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삶의 진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 그만큼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울고 있는 내 곁에 이제 그만하라고 재촉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남은 가족을 생각해야지 같은 어쭙잖은 조언 대신 내 눈물이 마를 때까지, 떠난 사람에 대해 더는 할 이야기가 없을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을 때까지 내 곁에서 산처럼 묵묵하고 바다처럼 먹먹하게 버텨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우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고 있고 웃고 싶을 땐 마음껏 웃을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가장 빠르고 단단하게 슬픔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27~33p)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금세 잊어버리기보다 그를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가장 건강한 태도입니다. 떠난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들, 그 사람의 활동과 곤계들, 생생했던 표정과 말들을 추억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은 물리적 죽음이 정서적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게 해서 남은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36p) 슬픔이나 고통을 억누르고 외면하면 당장은 고통을 덜 느끼므로 전보다 편안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슬픔이나 고통의 감정을 누르면 즐거움, 기쁨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도 같이 눌러집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선 자체가 평평해지는 겁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전보다 덜 힘들고 잘 견딘다 싶어 내가 더 성숙해졌나 착각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닙니다. 그렇게 감정선 자체가 밋밋해지면 대인관계에서 곤란을 겪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아픈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 다른 사람들은 눈물을 쏟기도 하는데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겁니다. 당황스럽니요. 그러면 지금 울어야 하나 하고 머리로 생각하게 됩니다. 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계산하는 거죠.…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대인관계에서 극도의 긴장감과 피로를 느낍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힘든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워 피했던 일은 이렇게 감정마비로 연결되며 내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가져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슬픔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고통을 고통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57~58p) 목숨을 버리는 이유는 각자가 처한 환경과 기질, 심리적 상황에 따라 다 다르지만 대개의 자살자들이 목숨을 끊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직면하는 감정은 자기모멸감과 무력감입니다. 죽을 만큼 외롭거나 자기혐오가 심할 때, 절박하게 돈이 필요하거나 통제되지 않는 통증으로 힘들 때 자기모멸감과 무력감은 극대화됩니다. 그럴 때 타인에게 손을 내밀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껏 움츠러들고 쭈그러진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은 모멸감과 무력감을 더 증폭시키기 때문입니다.… 자기모멸감과 무력감으로 바닥까지 떨어진 사람이 모멸감과 무력감을 느낄 만한 일을 하기란 어렵습니다. 당당하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힘들게 말을 꺼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못하고, 세상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채 끝을 맞게 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생을 유지하는 것보다 버리는 쪽이 자기가 지키려 하는 것을 더 잘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죄책감이 든다고 하셨지요. 누군가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지면 그 사람과 심리적, 물리적으로 가까운 순서대로 죄의식을 갖습니다. 가장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 죽는 순간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사람이 가장 큰 죄책감을 갖는 것입니다.… 아무렇지 않다면 오히려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왜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지, 곁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 힘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 힘들어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힘든 상황에서 힘들어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더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충분히, 마음껏 힘들어할 수 있어야만 그 다음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름은 시간이 지난다고 살이 되지 않습니다. 고름을 빼내야만 그 위에서 새살이 꾸둑꾸둑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마음껏 울고, 마음껏 미안해하고, 마음껏 그리워하고 마음껏 연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슬픔을 겪은 이에 대한 예의이고 그에게 전하는 마지막 존중이며, 동시에 슬퍼하는 자신에 대한 예의이자 존중입니다. (76~80p) 사랑하는 사람이란 내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나의 내밀한 욕구를 알아서 채워주길 기대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내 내밀한 욕구가 클수록 좌절과 상처도 그에 비례해서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충족감과 안정감의 동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 가장 큰 상처를 주고받는 증오의 관계가 되기 쉬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92p)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있지만 다시 힘들어질 수도 있다' '힘들어져도 괜찮은 거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더 편안하게 슬플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긴장 상태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힘들어하는 모습도 그의 전부가 아니고 씩씩하게 잘 견디며 웃는 모습도 전부는 아닙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이 언제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숨통이 트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하면서 멋대로 해석하는 건 심리적 폭력일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동시에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공유하면 됩니다. 그것이 한 사람에 대한 온전하고 입체적인 진실입니다. 속마음만 진실이고 겉으로 보이는 건 가짜라고 보는 이분법은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폭력적 태도입니다. (99~102p) '지금 여기'만을 삶으로 여기고 살자는 것입니다. 잠시 후에 영영 못 보는 상황이 될지라도 덜 아쉽고 덜 후회스러운 삶을 사는 것 외에 미래를 대비하는 다른 방도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합니다. 많이 웃고 많이 느끼고 많이 나눕니다.… 죽음을 위한 대비는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는 것을요. 그것이 죽음에 대한 유일한 대비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됐습니다.… 더 졍교하게 말하자면 '사랑하고 사랑받았다'가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은 삶을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죽음에 대한 진정한 대비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슬픔과 그리움까지 넘어서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 대신 그의 부재에 집중하고 몰입하며 마음껏 슬퍼할 수 있게 할 겁니다. 눈물과 슬픔 속에서 그 사람이 '내가 마음껏 사랑했던 사람, 내게 충분히 사랑받았던 사람'으로 반복해서 떠오른다면 저는 남은 생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서로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이별하는 것으 생살을 찢는 일입니다. (118~122p) 지금 내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잊으려고 한다는 건 그만큼 괴롭다는 증거입니다. 무조건 피하려고 하면 나중에 그에 대한 심리적 댓가를 고스란히 치르게 됩니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고통이 있다면 우선 거기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리워지면 충분히 그리워하고 울고 싶으면 충분히 울어야 합니다. 그런 고정을 충분하게 거친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말고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사정을 해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머물면 더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문을 필요치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본래의 무의식적 균형성, 건강성이 있습니다. 충분히 채워지면 저절로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본능적인 마음의 작용입니다. 기억하지 않으려 하고 자꾸 떠나려고 지우려고 하면 오히려 그 고통에서 한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매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의 법칙이 그렇습니다.(135~13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