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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페이트만 -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이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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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페이트만 -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이후]

팽이a 2019. 9. 10. 22:10

 

 착취는 정확하게는 신체상의 재산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는 한 당사자의 수중에 명령의 권리를 줄 때 가능하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고 남편은 아내를 착취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노동자와 아내는 고용계약과 결혼계약을 통해 고용주와 남편에게 복종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25p



  요컨대 가부장적 권리라는 이전 세계의 자취는 계약이라는 새로운 시민적 세계에 선행하는 것이다. 즉 가부장제는 메인 경(Sir Henry Maine)이 구세계로부터 신세계로의 변화를 "신분에서 계약으로의 운동"이라고 규정했을 때의 '신분'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계약은 예속적인 신분 질서나 가부장제와는 대비되고 반대되는 자유로서 그 의미를 획득한다.                     - 26p



  개인들이 신체상의 재산을 가진다는 관념은 계급과 가부장적 지배에 대항한 투쟁에서 중심적이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맑스는 [자본]을 저술할 수도, 노동력의 개념을 정식화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개인에 대한 이러한 견해와 자유가 계약이자 소유권이라는 추론을 거부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또한 임노동과 자본주의, 또는 좀 더 오래된 사회주의적 술어인 임금 노예라고 불리는 것의 폐지를 요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맑스가 신체상의 소유권이라는 관념을 이러한 개념과 그것이 공헌하는 사회적 질서의 형태 양자를 거부하기 위하여 사용해야만 했다는 점은 이제 시장사회주의와 최근의 학문적 유행인 합리적 선택 및 분석적 맑스주의에서 잊혀질 위험에 처해 있다. 유사하게 여성들이 신체상의 재산을 가진다는 주장은 결혼법을 개혁하고 시민권을 얻으려는 시도로부터 낙태의 권리를 요구하는 데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의 많은 페미니즘적 캠페인을 고무하였다. 페미니스트들에게 그 관념의 호소력은 아내의 신분에 대한 영미법의 교외가 아내들이 그들 남편의 재산이라고 주장했을 때, 남성들이 아직까지도 신체적으로나 마음속으로 여성의 신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고 공공연하고 요구할 때, 그리고 남성의 성 권리 법의 강화를 청원할 때 쉽게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여성들이 신체상의 재산을 가진다는 승인을 얻는 것은 가부장제에 대하여 결정적으로 일격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역사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이 신체의 소유권이라는 언어로 쉽게 정식화될 수 있는 쟁점들 주변에서 캠페인을 벌였던 반면에, 영향력 있는 페미니즘적 주장은 여성들이 남성의 미약한 반영으로서가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시민적 자유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주장은 남성 소유자로서 개인을 가부장적으로 구성하는 것에 대한 명백한 거부에 의지한다.                     - 31,32p



  계약의 관점에서 매춘부는 시장에서 그녀의 신체가 재산의 일부분으로서 제약받는 것을 거부하는 재산의 소유자이다. 공통적으로 주장되는 것처럼 매춘부는 그녀 자신이나 그녀의 성적 부분을 파는 것이 아니라 성적 서비스의 사용을 계약한다. 매춘부와 다른 여타의 노동자나 서비스 판매자간에는 어떠한 차이도 없다. 다른 '개인들'처럼 매춘부는 그녀의 신체상의 재산에 대하여 외적 관계에 서 있다.                          -267p




  그렇다면 매춘의 문제는 왜 남성이 여성의 신체가 자본주의적 시장에서 상품으로 팔리기를 요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요약하게 된다. 또한 성적 계약의 이야기는 그 답을 제공한다. 매춘은 남성들이 여성의 신체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는 방식들 중의 하나인 남성의 성 권리라는 법 행사의 일부분이다.                                  - 270p



  매춘제도의 구조 내에서 '매춘부'는 '아내'가 결혼 구조 내에서 '남편'에게 종속되는 것처럼 '고객'에게 종속된다.           - 271p



  매춘은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한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사용하는 것이다. 매춘부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욕망이나 만족도 없다. 매춘은 상호간의 즐거운 신체 사용의 교환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일방적으로 사용하는 돈을 위한 교환이다. 매춘제도가 인간 욕망의 자연적인 확장으로서 제시될 수 있다는 점과 '사랑 없는 섹스'가 자본주의적 시장에서 여성의 신체 판매와 동일시될 수 있다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회피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왜 남성들은 자연적인 성욕의 만족이 자본주의적 시장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공적 접근의 형태를 취해야만 한다고 요구하는가?
  매춘이 단지 자연적인 성욕의 한 표현이라는 주장은 반드시 매춘과 음식을 비교한다. "우리 모두는 음식이 필요하며, 따라서 음식은 우리에게 이용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성적 욕망들은 음식에 대한 우리의 식욕만큼이나 기본적이고 자연적이며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된다." 이런 주장은 매춘에 대한 주장도 아니고 어떠한 형태의 성적 관계에 대한 주장도 아니다. 최소한의 식량이 없다면 인간은 죽지만,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어느 누구도 성적인 욕구를 위한 배출구의 결핍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또한 음식에 대한 인간의 욕구와 섹스에 대한 욕구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은 때때로 손에 넣을 수 없지만, 모든 사람은 수중에 성적 욕망을 만족시킬 수단을 가지고 있다. 성적인 고통을 덜기 위하여 성적인 관계를 맺어야 할 자연적인 필요는 존재하지 않는다.                         - 276p




  매춘부를 착취당하는 노동자로 간주하는 대신에, 노동자들이 매춘부와 동일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맑스주의적인 매춘에 대한 비판은 "매춘이 노동자의 일반적인 매춘의 단지 특정한 표현일 뿐"이라는 맑스의 주장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매춘은 경제적인 강압, 착취와 임금 노동의 소외를 표상한다. 한 비평가가 언급하는 것처럼 "매춘은 생산자로 타락한 근대 시민의 발현이다." 매춘계약은 단지 고용계약의 사례까 아니다. 오히려 고용계약이 매춘계약으로 둔갑한다. 따라서 매춘은 임금 노동에서 잘못되어 있는 모든 것을 상징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의 착취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서 매춘부를 바라보는 것에는, 그리고 노동자를 매춘부로 표상하는 것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노동자'는 남성적이지만 그의 비천함은 여성의 전형으로 상징되고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보편적인 매춘의 체계로서 묘사된다. 매춘부가 비천한 임금노동의 상징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은 매춘부가 파는 것이 다른 노동자들에 의해 계약된 노동력과 진정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매춘이 다른 지불 고용과 정확하게 동일한 의미에서의 작업이라면, 매춘부의 현재 지위는 계약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오로지 법적 금지, 위선과 성에 관한 낡은 관념 탓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성적 계약의 이야기는 매춘과 여성들이 주로 종사하는 직종간의 차이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을 제공한다. 매춘계약은 한 여성과의 계약이고, 따라서 남성들간의 계약인 고용계약과 동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노동자는 언제나 자본가와 고용계약을 체결한다. 만약 매춘부가 단지 또 다른 노동자일 뿐이라면, 매춘계약 역시 항상 한 자본가를 포함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 계약을 체결하는 남성은 노동자이다. 
                   - 280, 281p




  신체와 자아 사이에는 내적 관계가 있다. 신체와 자아는 동일하진 않지만, 자아는 신체와 분리불가능하다.        - 287p



  남성성과 여성성은 성적인 정체성이다. 자아는 그 성적 특성에 완전하게 포함되지는 않지만, 정체성은 자아의 성적 구성과 분리될 수 없다. 근대 가부장제에서 자본주의적 시장에서의 여성 신체의 판매는 남성 야구 선수의 신체 판매나 임금 노예의 노동(신체)의 사용에 대한 통제권의 판매와는 다른 방식의 자아 판매를 포함한다. 성적 계약의 이야기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에 대한 가부장적 구성이 자유와 종속간의 정치적 차이이고, 성적인 지배권은 남성들이 남성다움을 확인하는 주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 2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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