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역할이란 단어의 존재는 성차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상의 정치인지,젠더가 얼마나 인식하기 어려운 사회적 구조인지,얼마나 탈정치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성의 구별이‘사회적 억압 제도’가 아니라 단지‘대칭 집단’이라는 사고방식은 남성과 여성을 성별이 다를 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범한 개인들의 집합으로 보는 것이다.성별 관계는 계급,인종 문제처럼 정치적인 것이다.지배 대 피지배,중심 대 주변,강자 대 사회적 약자,주체 대 타자의 관계다.그러나 대개 젠더 관계는 균형 잡힌 대칭으로 생각한다. 성별을 대칭적으로 파악하는 우리 사회 전반의 상식과‘양성평등’을 주요 전략으로 삼아 왔던 여성주의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인간은 양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언어와 현실의 관계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여성주의는 출산이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선택 사항이며,성별 분업의 하나라고 주장해 왔다.한국 사회는1970년대 여성의 낙태를 주도하고 인구 조절에 앞장서 왔다.이러한 현상들은 출산이 인간의 선택이며 사회 정책임을 분명히 보여준다.특히 현재의 저출생 현상은 여성의 고등 교육화에 따른 여성 자신의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여성들은 저출생을 통해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보여주었다.그러나 이러한 저항은 다시 남성 중심의 인구학이라는 또 다른 정치와 충도라고 있다.출생이야말로 대표적인 정치적 의제이다. 자연은 발명되는 것이다.인간은 살아 있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이 양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고는 인류 역사 전반을 지배해 온 전제였을 뿐 아니라 그간의 언어와 사유 체계가 만들어지는 데 핵심 역할을 해 왔다.이분법은 주체와 타자가 하나로 묶인 주체 중심의 사고다.주체가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삼아 나머지 세계인 타자를 규정하는 것,이분법은 주체 일방의 논리다.세상의 모든 지식은 오해,오식,편견,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객관적,중립적,보편적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분법적 사고의 핵심적인 문제는 세 가지다.위계를 대칭으로 위장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한다,대립하는 이항 외 다른 존재 혹은 다른 방식의 사고의 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원형으로서 모든 언어의 모델,척도,기원,전형으로서 인류를 지배해 왔다. 근대화,제국주의화 과정에서 백인 남성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인류의 위계를 만들고,문명화 작업의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정의하고,자신의 필요에 따라 노동을 강요해 왔다.이분법은A가 아닌 것을 사용하고 배치하고 규정할 수 있는A의 권력을 말한다.젠더는 남성의 여성 지배를 의미한다.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강자의 보편만이 보편이고,약자의 보편은 특수로 간주된다.보편성의 반대는 특수성이 아니라 차이다.특수성은 보편의 하위 개념인 반면,차이는 보편성의 전체주의를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보편과 동등한 개념이다.여성주의는 남성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평등은 다른 사람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다른 이들과 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자유주의 여성주의는 여성도 남성과 같은 개인이라는 인식에서,같은 시민으로서 공적 영역에서 활동할 기회와 조건의 평등을 요구한다.이제까지 한국 여성 운동은 여성의 이해를 실현한다기보다 공적 영역 진출,사회 참여,여성의 노동과 역할의 확대였다.양성평등은 여성주의의 덫이다.여성주의의 목적은 사회 정의로서 성차별을 철폐하는 것이지 남녀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집단과 집단이 평등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젠더가 작동하는 근본 구조는 변함없는 상태에서 자유주의 차원의 평등은 남성에게는 오해와 반발만을,여성에게는 허울뿐인 평등을 약속할 뿐이다.여성들의 공적 영역 진출에 비해,남성들의 사적 영역으로의 진입은,즉 가사 노동,육아,돌봄 노동은 없다.여성 인구는 거의 모두 공사 두 영역에서 노동하지만,남성 인구는 극히 일부만이 사적 영역의 노동에 종사한다.여성의 사회 진출은 여성 해방이 아니라 이중 노동일 뿐이고,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비혼(저출생)과 파트타임(비정규직)선호,다른 여성(시어머니,친정어머니)의 희생과 연대로 사적 영역에서의 노동 부담을 견디고 있다.국가는 국가 경쟁력을 위해 여성을 임의적,일시적으로 사용하고 버리기를 반복하는,여성 노동력 동원을 일과 가정의 양립 정책이라고 속이지 말고,시민 사회와 여성 운동 세력은 여성의 과다한 노동 상황을 여성의 지위 향상,여성 운동의 발전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지 말아야 한다.왜 남성들은 아이를 키우겠다,키워야 한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는가.왜 그들에게 육아는 언제나 남(여성,국가,사회)의 일인가.육아에서 국가보다 남성 개인의 인식과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육아는 남성의 성 역할이 되어야 한다.남성도 여성이 겪는 육아와 모성으로 인한 죄의식,스트레스,자기 분열,커리어 포기 경험을 겪어야 한다.사적 영역에서 남성의 노동이 사회적 정치적 이슈로 전면에 등장하기 전까지 평등 논쟁은 의미가 없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정희진22~5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