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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네 마르살 -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부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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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네 마르살 -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부키]

팽이a 2019. 9. 16. 23:17

여성들은 1960년대 혹은 2차 대전 때부터 일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여성들은 항상 일을 하고 있었다. 20세기에 변한 것이 있다면 여성들이 일터를 바꾼 것이다. 집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밖에 나와 일하고,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14p)
이 현상은 거대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가져왔다. 인구의 절반이 자신이 하던 일을 집에서 시장으로 가지고 나온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한 경제 체제에서 다른 경제 체제로 이행했다. (14p)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욕구는 명확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욕구는 무한하다. 사랑은 다르다. 사랑은 희소성이 있어, 사회 전체에 골고루 나눠줄 만큼 풍부하지 않다. 따라서 사랑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병에 넣어서 잘 보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21p)
애덤 스미스는 자유시장이 효율적인 경제를 만드는 데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의무와 규제를 집어치우고 시장을 자유롭게 돌아가도록 두면, 경제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라는 무한한 공급원을 동력 삼아 시계처럼 잘 맞아떨어져 돌아간다는 논리를 폈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면 모든 사람이 각자 필요한 재화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전체가 잘 돌아가게 된다. 구성원 중 누구도 전체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는 우리 시대에 가장 각광받는 이야기가 됐다. (22p)
아이작 뉴턴은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펴냈다. 행성들의 움직임과 서로 당기는 힘이 천체를 움직이는 힘인 인력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턴은 우리에게 현대 과학을 소개함으로써 존재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뉴턴의 시대에 수학은 신성한 언어로 간주됐다. 인류는 신이 부여한 자연이라는 책을 수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이해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신만이 알았던 태양계의 법칙을 과학적 방법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변했다. (24p)
우리는 세상을 하나의 기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제 세상은 하나의 기계이자 엄청나게 큰 로봇, 내부의 다양한 요소가 자동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공연장이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이와 동일한 접근법으로 사회의 법칙과 인류를 위한 신의 설계도까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이 움직이는 모종의 메커니즘이 있다면, 사회에도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법칙은 과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만 한다. (26p)
전체가 변화하는 것은 근본이 되는 입자들이 변화해서가 아니다. 이 입자들은 자신이 구성하고 있는 전체로부터 독립적이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입자들이 배열되는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입자들의 움직임은 자연의 법칙에 따른다. 그리고 세상은 시계가 작동하는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돌아간다. 경제학자들도 이 기술을 사용하고 싶어 했다. 이들은 경제를 이해하고자 작은 단위로 쪼갠다. 조각을 점점 더 작게 쪼갠 끝에 경제학자들은 전체를 분해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개인이라고 불렀다.
이 개인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당시 물리학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에 집중했던 것처럼 경제학자들도 자유 의지를 가진 개인을 연구하는 데 온 정신을 바쳤다. 사회는 이 개인들의 총합에 불과했다. 경제가 변화한다면 이 개인들이 변화해서가 아니다. 개인의 정체성은 다른 요소의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대신 개인은 선택을 한다. 변확ㅏ 발생하는 것은 개인들이 배열된 패턴이 변하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다른 개인과의 관계 안에서 행한 선택들 때문이다. (27p)
애덤 스미스는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돌봤고, 사촌이 돈 관리를 했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아들을 돌봤지만, 저녁 식사가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를 논할 때 애덤 스미스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에 속해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정원을 가꾸고, 형제자매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집에서 기르는 소의 젖을 짜고, 친척들의 옷을 만들고,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 활동 중 어떤 것도 주류 경제학 모델의 생산 활동에 포함되지 않는다. (31p)
프랑스의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을 제2의 성으라 규정했다. 남성이 항상 먼저다. 남성만이 의미가 있다. 세상을 정의하는 것은 남성이고 여성은 그외 인물이다. 여성은 남성이 아닌 모든 것인 동시에, 남성이 남성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다.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면 아무 의미도 없다. 2의 성이 있듯 제2의 경제가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남성이 맡아 온 일들은 의미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시각이 경제학적 세계관을 정의한다. 여성의 일은 그 외의 일이다. 남성이 하지 않는 일,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남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일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의미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절반의 답을 찾은 데 불과하다. 그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상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가 매일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보살폈기 때문이다. (32p)
시장에 참여할 때 우리는 모두 익명의 존재로 간주된다. 이 때문에 시장이 우리를 자유롭게 놓아두는 것이다. 개개인이 누구인지는 상관없으며 개인적 특성과 다른 사람과의 감정적 연대는 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다. 오직 중요한 것은 지불 능력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이나 상황적 맥락이 없는 상태에서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한다. 모두가 바다에 떠 있는 섬과 같다. 아무도 우리를 판단하지 않고 어떤 것도 우리를 구속하지 않는다. 유일한 한계는 유한한 시간과 자원 같은 기술적인 요소들뿐이다. (36p)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우리가 아는 경제 이론의 기초를 제공하는 존재다. 경제학에서는 연구해야 할 대상을 개인이라고 정했고, 따라서 이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지에 대해 단순화된 이야기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었다.
그는 합리적이고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만 움직인다. 그는 가능한한 많이 가지려 하고, 궁극적으로 그의 길을 가로막는 것들을 파괴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42p)
주류 경제학 모델들은 이 경제적 인간이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특성은 모든 것을 무한정 원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이러한 욕구를 제한하는 것은 자원의 희소성과 다른 모든 사람들도 똑같이 모든 것을 무한정 원한다는 점뿐이다. 이 희소성에서 선택이라는 거이 탄생한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다면 선택해야 한다. (43p)
감정, 이타심, 배려, 연대감은 주류 경제학 모델의 경제적 인간이 지닌 특성이 아니다. 그는 연대감이나 특정 감정을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은 배보다 사과를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호에 불과하다. 그는 감정을 느끼는 경험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감정은 결코 그의 일부가 아니다. 경제적 인간에게는 어린 시절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을뿐더러 사회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면서,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 무인도에서든 사회에서든 늘 혼자인 존재. 사회는 단순히 개인들이 모인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46p)
경제학은 사랑을 아끼는 법을 다루는 과학이 되었다. 사회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로 유지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경제적 인간이 탄생했고, 그 후 사랑은 사적 영역으로 옮겨 갔다. 사랑은 경제적 세상 밖에 격리되어야 했다. (46p)
남성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경제학에서도 그랬고 성 문제에서도 그랬다. 여성에게 이 자유는 금기 사항이었다. 여성에게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임무가 주어졌다. 여성은 출생과 생리라는 신체적 제약 조건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합리적일 수가 없고, 이 때문에 그들은 합리성과 정반대의 개념이라고 규정되었다.
여성의 욕망은 남성의 그것보다 늘 훨씬 혹독하게 비판받았다. 그것은 위협적이고 파괴적이며, 자연스럽지 않은 무언가로 간주됐다. 여성은 절대 남성만큼 이기적이도록 허용되지 않았다. (51p)
남성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역할, 여성은 손상되기 쉬운 사랑을 지키는 역할이 주어졌다. 그리고 이 역할 때문에 경제학에서 여성은 소외되었다. 여성들은 내제된 자기희생적 특성 때문에 사적 영역에 묶이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여성은 경제적인 존재로 간주되지 않았다. 자녀 양육, 청소, 빨래, 다림질 등의 가족을 위한 활동은 사고팔거나 교환할 수 있는 유형의 재화를 생산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1800년대의 경제학자들은 여성이 경제적 번영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번영은 오직 운반이 가능하고 공급이 제한되어 있으며, 사람들에게 직간접으로 즐거움을 주거나 고통을 피하게 해 주는 것들과 관계가 있었다. 이 정의로 인해 여성들이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 해 주는 모든 일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남성이 노동한 결과는 측정할 수 있고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 여성이 노동한 결과는 보이지 않는다. (52p)
가사노동은 그 성격상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의 노동은 경제적 활동이 아니며, 이들이 지닌 아름답고 다정다감한 본성이 자연스레 발현된 것에 불과하다. (53p)
이런 식의 접근방법은 1950년대 들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시카고대 경제학과 소속의 남성 몇 명이 인간의 모든 행위, 심지어 여성의 경제적 활동까지 포함한 모든 행위를 경제학 모델을 이용해 분석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게리 베커는 시카고대의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가사노동, 차별, 가정생활과 같은 현상을 경제학 모델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53p)
그들은 추론했다. 세상은 합리적인 곳이고 시장은 언제나 옳았다. 여성은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남성보다 더 낮은 보수를 줘야 한다. 여성이 게으르거나 재능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직장에서 남성과 동일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여성이 출산을 위해 몇 년 동안 직장을 떠나기 때문에 남성만큼 고등 교육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여성은 커리어를 위해 투자를 덜 하고 더 적은 보수를 받아야한다.
이는 실제 현실과 비교해 보면 그다지 합당하지 않다. 많은 여성이 남성만큼 고등 교육을 받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더 낮은 보수를 받는다. 차별이라고 부를 만한 이 현상을 시카고의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이렇게 주장했다. 모든 사람이 합리적인데 차별이 생긴다면, 차별마저도 합리적이다. (57p)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점은 곧 정치적 위계를 정당화했으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곧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차이 난다는 점은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 하는 것이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여성이 집에 머무르면서 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 돌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것일 뿐이다. 여성의 육체에 여성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된다는 것의 의미는 수학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육체에 여성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된다는 말이다. 여성만이 쾌감만을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 신체 부위를 가졌다는 것의 의미는 이사회의 임원으로 일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61p)
경제적 인간은 육체가 없고, 따라서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러나 개인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남성성과 동일시하는 문화적 특성들을 모두 지녔다. 그는 합리적이고, 냉담하고, 객관적이고, 경쟁적이고, 독립적이고, 이기적이고, 상식에 의해 움직이고,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이다. 그가 갖지 않은 특성(감정, 육체, 의존성, 연대감, 자기희생, 부드러움, 자연, 예측 불가능성, 수동성, 인간관계 등)은 모두 전통적으로 여성과 결부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것이 단지 우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은 여성도 경제적 인간(남성)과 동일한 존재인 양 그대로 모델에 추가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 시대부터 경제적 인간은 그를 돌보고 그가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경제적 인간이 이성과 자유를 대변하는 것은 누군가가 그 반대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65p)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이 직업 전선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여성이 직장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집안일을 풀타임으로 돌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여성들은 직장에서 일하지만, 그 시간 동안 집안일을 돌볼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의 재력이 있는 소수에 불과하다. 청소하는 사람의 집은 누가 청소해 주는가? 보모의 딸은 누가 돌보는가? 세계경제를 감싸고 있는 복잡다단한 돌봄 체계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답할 수 없다. 현재 세계 이민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이민 여성들의 삶은 긴 노동 시간과 저임금으로 이루어진다. (90p)
전 세계적으로 가사노동에 고용된 사람들은 다른 어떤 일보다 긴 노동 시간, 불안정한 조건, 예측 불가능한 업무를 감수하고 있다. 이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언어적, 물리적, 성적 폭력이 흔히 일어나지만 이들 중 상당 수가 그 나라에 불법 체류하기 때문에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91p)
많은 나라에서 여성 이민자들이 고국에 보내는 돈은 해외 원조와 외국인 투자를 합친 것보다 국가 경제에 더 큰 기여를 한다. 원래 청소를 해야 했을 서구 가족의 여성의 시급보다 가사 도우미의 시급이 현저히 낮지 않으면,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해 이 상황이 유지되려면 여성 사이의 불평등이 지속되어야 한다. (92p)
가사노동을 GDP에 포함하지 않는 것의 가장 주요한 논거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수행되는 가사노동의 양은 거의 항상 동일하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은 전체 일하는 시간의 3분의 2를 무보수 노동에 바친다. 남성의 무보수 노동 시간은 4분의 1이다. 농업 부문이 더 큰 개발도상국에서는 이 격차가 더 크다. (94p)
여성의 노동은 측정할 필요를 못 느끼는 천연자원처럼 취급된다. 늘 존재할 것이라 추정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노동은 비가시적이지만 사라지지도 않는 인프라로 간주된다. (95p)
우리는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과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말한다. 양쪽 영역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구조를 아예 변화시킬 수는 없는가? (99p)
여성은 경제적 인간의 세상을 향한, 남성과 동등한 접근권을 보장받기 위해 여전히 투쟁하고 있다. 일터에서 책임감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그녀가 진정으로 있어야 할 곳은 집이라는 생각을 종식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 이와 동시에 여성은 남성과 달리 가정과 가족을 보살피는 능력도 심판받는다. 그 결과로 빚어지는 일과 가장 사이의 갈등은 여성의 문제로 묘사된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여성의 책임이다. 어머니가 되면 모든 것이 충돌한다. 서로 분리돼야 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갑자기 한데 섞인다. (100p)
여성들은 노동 시장에 진입했지만 남성은 그에 상응하는 정도로 집안일에 전입하지 않았다. 일과 가정 사이의 경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102p)
모든 사회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구조를 어떤 식으로든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애덤 스미스는 그 답이 자기 이익 추구라고 했지만,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경제학은 사랑을 아끼고자 했다. 그래서 배려, 공감, 돌봄 등의 덕목들은 경제적 분석에서 밀려났다.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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