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하리의 소소하고 작은 이야기

헤르만 헤세 - 페터 카멘친트 [민음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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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 페터 카멘친트 [민음사]

팽이a 2019. 9. 16. 23:18

나는 내 자신의 생각들로 너무 달궈져 화상을 입고 있다. 그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때가 자주 있다. 그러니 먼지투성이인 모든 방을 뛰쳐나올 수밖에.
 니체
 


구름은 갓 태어난 아기의 영혼처럼 부드럽고 연약하며 평화롭다. 천사처럼 아름답고 풍요롭고 너그러우며, 죽음의 사자처럼 어둡고 회피할 수 없으며 가차 없이 냉정하다. 구름은 엷은 층을 지어 은빛으로 떠다니고, 황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하얗게 미소 지으며 항해하는 가 하면, 노랑, 빨강, 파랑이 되어 가만히 머무른다. 아니 살인자처럼 음침하게 살금살금 기어 다니고, 미친 듯 말을 모는 기수처럼 머리를 들고 마구 질주하며, 기운 없는 사람처럼 창백한 하늘 높은 곳에서 슬프게 가로누워 꿈을 꾼다. 그것은 행복한 섬, 축복하는 천사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펄럭이는 돛, 방랑하는 학과 비슷한 모습을 짓기도 했다. 구름은 모든 인간 욕망의 아름다운 표상으로서 신의 하늘과 가련한 땅 사이, 그 양편 모두에 속하면서 떠돌아다닌다. 그렇기에 구름은 펄럭이는 영혼을 순수한 하늘 쪽으로 휘감아 오르게 하는 대지의 꿈과 같다. 구름은 모든 방랑, 모든 탐구, 갈망과 향수의 영원한 상징이다. 구름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수줍어하고 그리워하며 고집스럽게 매달려 있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은 시간과 영원성 사이에 매달린 채로 방황한다. , 아름답고 정처없이 떠도는 구름이여! 나는 철부지 어린 시절부터 구름을 사랑하였고 넋을 놓고 구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 자신도 한 조각 구름으로 삶을 배회하리라는 것, 어디에서든 이방인으로 방황하며, 시간과 영원성 사이를 떠돌아다니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29)


얼음과 눈이 녹아 흐르는 물로 가득 차 깊은 협곡, 푸르스름한 빙하, 무시무시한 퇴적빙, 이 모든 것 위로 하늘은 종처럼 높고 둥글게 떠 있었다. 십여년 동안 산과 호수를 가까이 하고 살면서 여기저기 탁 트인 대기에 압도되어 본 사람이라면, 머리 위로 크고 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고, 눈앞에는 무한한 지평선이 가물거리는 날의 광경을 잊지 못할 터다. 산에 오르면서 나는 아래에서 이미 친숙하게 보아 왔던 절벽과 암벽이 그토록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돌연 거대한 넓이가 내게 불안과 경탄을 일으키며 쇄도하여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 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구나! 우리 마을은 저 아래 길을 잃은 듯 누운 채, 조그만 점처럼 반짝일 뿐이었다. 골짜기에 가깝게 붙어 있는 듯싶었던 산봉우리도 실제로는 여러 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에 있었다. 이 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세계에 대해 아주 좁은 시각과 불투명한 눈을 갖고 있다는 점을 예감하기 시작했다. 저 산 너머에는 우리의 이 외딴 산골에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굉장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나침반 바늘과 같은 어떤 것이 내 가슴속에서 무의식적 갈망으로 떨리더니, 이내 저 넓은 세계 쪽으로 강렬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구름의 아름다움과 우수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구름이 얼마나 끝없이 먼 곳으로 방황하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31)


방은 조용했고, 서서히 밝아 오는 아침노을의 붉은빛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마을과 집들은 아직도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죽어 가는 사람의 영혼과 함께하면서 집과 마을, 호수와 눈 덮인 산봉우리 위를 지나, 맑은 새벽하늘의 서늘한 자유 속으로 날아 들어가는 여유로움을 누렸다. 고통 또한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놀라움과 경외심에 사로잡힌 채,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가 어떻게 풀리는지, 삶의 둥근 고리가 잔잔한 떨림 속에서 어떻게 닫히는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평 없이 용감하게 삶과 이별하는 어머니는 너무나 숭고했다. 그녀의 장엄한 영광으로부터 서늘하고 맑은 한 줄기 빛이 내 영혼 안으로도 비쳐 드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곁에서 잠자고 있다는 것, 신부님이 없다는 것, 고향으로 돌아가는 영혼을 복되게 동행해주는 성사도, 기도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밝아 오는 방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영원의 입김이 나의 존재와 한데 뒤섞이고 있음을 감지했을 뿐이었다. 임종의 순간, 생명은 이미 꺼졌지만 나는 어머니의 싸늘하고 주름 잡힌 입에 생전 처음으로 키스를 했다. 그 접촉이 불러일으킨 기묘한 차가움이 갑작스러운 비탄과 함께 나를 엄습했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내 뺨과 턱, 손 위로 눈물이 천천히 방울져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52)


아름다운 몇 주가 찬란하고 행복하게 지나갔다. 나는 리하르트가 그렇게 황홀감에 젖어 들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쾌활하고 즐겁게 그 아름다움과 향락의 잔을 남김없이 비웠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양지바른 언덕 위의 마을들을 돌아다녔고, 술집 주인이나 수도사, 시골 처녀들, 작고 편안한 시골의 신부들과도 만났다. 그들의 소박한 잡담에 귀를 기울이고, 햇볕에 그을린 귀여운 아이들에게 빵과 과일을 먹도록 나누어 주고, 봄의 광영 속에서 빛나는 토스카나의 높은 산과 멀리서 반짝이는 리구리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우리 두 사람은 그 행복이 어떤 새롭고 풍요로운 삶을 맞이하기 위한 전조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일과 투쟁, 즐거움과 명성이 우리 앞에 너무도 가까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 행복한 날들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다. 곧 다가올 이별도 가볍고 일시적인 일로만 여겨졌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며, 그것이 평생 변함없으리라는 사실을 더욱 확실히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젊은 날의 이야기다. 이때를 뒤돌아보면, 마치 어느 여름 밤처럼 짧게만 느껴진다. 약간의 음악과 약간의 정신, 약간의 사랑과 약간의 허영, 그러나 그것은 엘레우시스 축제처럼 아름답고 풍부하고 다채로웠다. 그런데 그것은 바람 속의 촛불처럼 돌연 가련하게 꺼졌다. 취리히에서 나는 리하르트와 작별했다. 그는 나에게 키스하기 위해 두 번이나 기차에서 내렸고, 기차가 떠날 때에도 창문 밖으로 내다보며 내게 오랫동안이나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로부터 이 주일 뒤, 그는 남독의 개울만큼이나 작은 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터무니없이 익사했다. 나는 그를 보지도 못했고, 그가 묻힐 때 가보지도 못했다. 며칠 뒤, 그가 이미 관에 들어가 땅에 파묻히고 나서야 모든 사정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방바닥에 온몸을 내던지고 온갖 모욕적인 욕설로 하느님과 삶을 저주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미쳐 날뛰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지난 몇 년 동안 나의 유일하고 확실한 소유물이 우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그것은 사라져버렸다. 매일 수많은 추억이 나를 쫓아다니며 숨 막히게 하는 그 도시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내게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영혼의 뿌리까지 병들었고, 살아간다는 것이 두려웠다. 내 찢긴 존재를 다시 바르게 세우고, 새로 돛을 달고 남자로서 더욱 혹독한 운명에 맞서 나아갈 전망 따위는 당분간 희박해 보였다. 신은 내가 내 존재의 가장 훌륭한 부분을 순수하고 즐거운 우정에 바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마치 두 척의 빠른 배처럼 우리는 서로서로 협력하여 물결을 헤치고 나아갔었다. 리하르트의 배는 화려하고 가볍고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서 내 눈에 비쳤다. 나는 그가 나를 아름다운 목적지로 데려가 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나는 갑자기 어두워진 물 위에서 방향을 잃은 채 떠다니게 됐다. 나는 그 혹독한 시련을 이기고 별을 향해, 방향을 돌려 인생의 월계관을 얻기 위해 새로운 항해를 시작해야 하는, 다시 싸우고 방황해야 하는 운명의 전환점에 서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우정과 여인의 사랑, 청춘을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차례차례 나를 버리고 떠나갔다. 나는 왜 신을 믿거나 그의 강한 손에 나를 맡기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는 평생 어린애처럼 소심하고 고집스러웠다. 언제나 특별한 삶이 폭풍처럼 덮쳐 와서 나를 지혜롭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그 커다란 날개 위로 무르익은 행복을 가져다 주기만을 기대했다. 그러나 현명하고 검소한 삶은 말없이 나를 몰아붙였다. 그것은 내게 폭풍도 별도 보내지 않았으며, 내가 다시 초라해지고 인내심이 강해져 나 스스로 고집을 꺾기만을 기다렸다. 삶은 거만하고 잘난 척하는 광대놀이를 계속하도록 내버려두었고, 길을 잃은 어린애가 어머니를 다시 찾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102~104)


어느 날 저녁, 나는 부아의 숲에 혼자 앉아, 내가 지금 파리를 떠나야 할지, 또는 아예 인생살이를 끝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내 삶 전체를 돌아보고, 내가 별로 잃을 만한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어떤 기억이 날카롭게 떠오르면서 오래전에 지나간, 오래도록 잊고 있던 어떤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이른 여름 아침에 산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나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어머니는 침대 위에 누워 죽음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그날의 일을 잊고 있었다는 데에 놀라고 부끄러웠다. 바보 같은 자살 생각은 사라졌다. 진지하고 완전히 탈선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건강하고 선한 생명이 죽어 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는 없다고 믿었다. 나는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순간을 다시 한 번 보았다. 나는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순간을 다시 한 번 보았다. 나는 그 장면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고귀하게 하는 죽음의 진지하고 고요한 작업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죽음은 냉정했지만, 뛰쳐나간 아이를 집으로 맞아들이는 인자한 아버지처럼 다정하고 자비롭기도 했다. 나는 갑자기 죽음이 우리의 현명하고 착한 형제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죽음은 올바른 때를 알고 있으니,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그를 기다려도 좋을 것이다. 나는 또한 고통과 실망과 우울은 우리를 망치고 쓸모없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성숙시키고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106~107)


라인 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작은 방에서 나는 열심히 연구하고 생각에 골몰했다. 삶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는 것, 어떤 격렬한 물살도 나를 그 안에 끌어넣을 수 없다는 것, 어떤 열정이나 관심도 나를 뜨겁게 달궈 몽롱한 꿈에서 깨어나게 할 수 없다는 데에 나는 좌절했다. (111)


이 모든 노력들에는 삶과 충동, 움직임이 내재해 있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하나도 내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없었다. 설령 그 모든 목적이 오늘 이루어졌다 해도, 나와 내 삶에는 전혀 감흥이 없었을 터다. 나는 희망 없이 의자에 파묻혀 책과 잡지들을 밀쳐놓은 채 계속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창문 밖으로 라인 강이 흐르는 소리와 바람이 술렁이는 소리를 듣고, 사방 어디에나 숨어 있는 커다란 우울과 동경의 언어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밤하늘의 하얀 구름이 놀란 새들처럼 푸드득거리며 무리 지어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고, 라인 강이 정처 없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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