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하리의 소소하고 작은 이야기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병률. 문학과지성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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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병률. 문학과지성사]

팽이a 2019. 8. 24. 16:48

1. 이토록 투박하고 묵직한 사랑

 

 

 

 

허공을 향해 날아갔으나

착지하지 못하는 돌

 

벼랑 너머로 굴러 떨어졌어도

어디에도 닿지 않고 허공에 매달려 있는 돌

 

첨벙 소리를 내며 물로 빠졌으나

가라앉지 않고 이리저리 물살에 쓸리는

 

삼켰으나 넘어가지 않고

목구멍 안에 머물러 있는 돌

 

감정을 시작하고 있는지

마친 것인지를 모르는 것처럼

 

눈을 감으면 배가 고파서 

더 먼 곳을 생각하고

 

월요일의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면서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이상해한다

 

멍하니 떠 있던 시소는 아무도 올라타지 않았는데

한쪽으로 기울고 있으며

 

계절의 겨드랑이에 돋아나던 깃털은

어느 날엔가는 자라는 것을 관두었다

 

발을 땅에 붙이고서는 사랑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완벽한 사랑은 공중에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어찌 삶이 비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2. 밤의 골짜기는 무엇으로 채워지나

 

 

 

 

깊은 밤 자리에 누워

나는 모르겠다라고 중얼거리면

조금은 알 것 같은 기운이

가슴 한가운데 맺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다는 아닌 듯하여

도통 모르겠다고

다시 말하는 밤이면

그 밤이 조금은 옅어지면서

아예 물러갈 것도 같은 것이다

 

여전히 모르겠다는 소리를

절대 입가에 스치게 해서도 안 될 것 같은 것이다

그럴수록에 침대의 관절은 삐걱거릴 것이니

 

어떤 거짓말로도 

밤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전체의 일부가 아니며 소설이나 시도 아닌 밤

 

세상에서 가장 육중하고

정밀한 조직의 얼룩으로 덮어놓은 밤

 

그럼에도 이 밤에 자꾸

생각의 강아지풀이나 꺾는 것은

생각을 파느라 그러는 것이다

 

 

 

 

 

 

 

 

 

3. 왜 그렇게 말할까요

 

 

 

 

우리는, 우리는 왜 그렇게 말할까요

 

그렇게 말한 후에 그렇게 끝이었다죠

그 말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니

절대 겹치거나 포개놓을 수 없는 해일이었다지요

 

우리는 왜 그렇게 들어놓고도

그 말이 어떤 말인지를 알지 못해 애태울까요

 

왜 말은 

마음에 남지 않으면

신체 부위 어디를 떠돌다

두고두고 딱지가 되려는 걸까요

왜 스스로에게 이토록 말을 베껴놓고는 뒤척이다

밤을 뒤집다 못해 스스로의 냄새나 오래 맡고 있는가요

 

잘게 씹어 뼈에 도달하게 하느라

말들은 그리도 억센가요

돌아볼 일을 만드느라 불러들이는 말인가요

 

대체 그 말들은 어찌어찌하여

내 속살에다

바늘과 실로 꿰매 붙여 남겨놓는단 말인가요

 

 

 

 

 

 

 

 

 

4, 무엇을 제일로

 

 

 

 

제일로

가장 무엇 하나만을 남겨 가질 것인가

제일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후라면 말이다

 

누구는 그 사람의 다정함이라 하고

누구는 목소리일 것이라 하지만

 

미련스러이 나는 그것이 꼭 하나여야만 하느냐고 묻는다

 

나에게 그것은 당신 손바닥일 수 있으며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가려 만들어주던 그늘일 수도 있으며

그 그늘 아래로 무참히 찾아온 졸음의 입자일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망하고 멸하고 난 후에라도 살아 있을

제대로 된 절망 하나를 차지하고

놓지 않겠노라 대답해야겠는데

 

도저히 뺄 것 하나 없는

그 사람의 무엇 하나만을

어떻게 옹색하게 바란단 말인가

 

 

 

 

 

 

 

 

 

5. 내가 쓴 것

 

 

 

 

눈을 뜨고 잠을 잘 수는 없어

창문을 열어 두고 잠을 잤더니

어느새 나무 이파리 한 장이 들어와 내 옆에서 잠을 잔다

 

그날 아침

카페에 앉아 내가 쓴 시들을 펴놓고 보다가

잠시 밖엘 나갔다 왔는데

닫지 않은 문 사이로 바람이 몹시 들이쳤나 보다

 

들어와서 내가 본 풍경은 

카페에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람에 흩어진 종이들을 주워

내 테이블 위에다 한 장 두 장 올려다 놓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우리들은 금세 붉어지는 눈을 

그것도 두 개나 가지고 있다니

그럼에도 볼 수 없는 것들도 있다니

 

사실은 내가 쓰려고 쓰는 것이 시이기보다는

쓸 수 없어서 시일 때가 있다

 

 

 

 

 

 

 

 

 

6. 사는 게 미안하고 잘못뿐인 것 같아서

 

 

 

 

 

거미가 실을 잘못 사용하더라도

 

계절이 한참 지나간 후에도 꽃대가 꽃을 내려놓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리

 

그조차도 세상의 많은 조합일지니

나의 잘못이 아니리

 

찬바람이 여름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더라도

그래서 감기로 잠시 아프더라도

 

정녕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리

그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는 것도

당신이 그에게 나머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까지도

 

생각을 만나지 않고 시장에 간 것

나의 잘못은 아니리

 

오후에 붙들려서 길을 따라 나선 것은

조금 맨발이 되자는 것이었으니

 

마음이 구덩이로 빨려 들어가 휘감기는 것도

그러곤 구덩이에서 꺼내지는 것도

찬바람이 시키는 계절의 일들일 테니

 

애써 모른 체한들

이 모든 것 나의 잘못은 아니리

 

 

 

 

 

 

 

 

7. 이 넉넉한 쓸쓸함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무심함을

단순함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만나자

 

저녁빛이 마음의 내벽

사방에 펼쳐지는 사이

가득 도착할 것을 기다리자

 

과연 우리는 점 하나로 온 것이 맞는지

그러면 산 것인지 버틴 것인지

그 의문마저 쓸쓸해 문득 멈추는 일이 많았으니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내지 않으면 안 되게 살자

 

닳고 해져서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발이 발을 뒤틀어버리는 순간까지

우리는 그것으로 살자

 

밤새도록 몸에서 운이 다 빠져나가도록

자는 일에 육체를 잠시 맡겨두더라도

우리 매일 꽃이 필 때처럼 호된 아침을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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